‘조용한 외교’ 벗어날 때 되었다
지난번 460여명의 탈북자들이 자유를 찾아 한국에 도착했다.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 수는 지난 99년 60명에서 2001년에는 572명, 2003년 1175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이번에 들어온 460여명을 합쳐 벌써 1200명을 넘었지만 수백 명이 한꺼번에 입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대규모 탈북자 입국에 대해 ‘조직적이며 계획적인 남한의 유인납치 행위이자 백주의 테러범죄’라며 원색적인 비난에 나선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탈북자 입국이 대량 탈북의 물꼬가 되어 독일 통일의 예에서 보듯이 북한 체제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극도로 초조해진 까닭이다.
사실 독일의 통일은 봇물 터지듯 한 동독 주민의 탈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구축되던 해 20만 7천명의 동독인들이, 1989년 가을에는 한달 사이에 10만명에 달하는 동독인들이 빈곤과 독재를 견디다 못해 풍요와 자유의 땅으로 탈주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탈북자 정책은 ‘대북 눈치외교’란 말이 나올 정도로 남북관계가 훼손되지 않게 조용하게 이루어져 왔고 대북 지원에서도 지원을 받는 쪽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등 북 쪽을 배려하는데 만 중점을 두어 왔다. 국경선을 넘어 중국 땅을 헤매는 10만여 탈북 동포의 참상에 대한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고 북한의 개방과 민주화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어 온 것이 사실이었다.
독일 통일을 전후하여 당시의 서독정부는 동독에 대한 모든 지원을 동독의 민주화와 인권에 연계시켰다. 서독의 콜 정부는 1983년 거액의 차관을 공여하면서 그 대가로 동 서독 국경선에 설치해 놓은 무기와 지뢰를 철거토록 유도했는가 하면 1984년에는 동독 주민의 서독 여행제한을 크게 완화하도록 하는 등 동독의 민주화 조치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탈북자가 매년 배로 증가하는 시대에 우리도 이제는 ‘조용한 외교’만으로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을 모색하되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탈북 동포의 인권에는 우리의 확고한 원칙을 천명하고, 나아가 독일 통일 당시의 서독 정부의 정책을 본받아 모든 대북 지원은 북한의 민주화와 연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대량 탈북자 시대를 맞이하여 탈북자들이 입국한 뒤의 정착지원도 일과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순조롭게 민주사회에 동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보살피고 지원하는 세밀한 종합 프로그램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