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신 은혜만큼 변화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정순례 권사(2) / 부천교회<이어서>
구제단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청암동에 이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만제단이 지어지고 동네마다 전도관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목사로 시무하고 있는 친오빠를 만나러 천안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오빠는 신학대학을 나와 천안의 감리교회에서 목회 일을 보고 있었는데, 한강 모래사장 집회에 참석했을 때는 하나님이 은혜가 많으신 분이라며 감탄을 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오빠와 저는 밤이 깊도록 종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오빠에게, 목회자는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빠는 받은 은혜가 있으시냐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지 못한 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에 대해 이야기하자 오빠는 “그거 박 장로가 손 닦고 발 씻은 물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오빠는 공부를 많이 하고 신학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손 닦고 발 씻은 물을 오빠에게 주면 잡숫겠습니까? 제가 먹을까요? 다 모략중상인데, 알지도 못하고 하는 이야기는 듣고, 직접 체험한 내 이야기는 왜 안 들으세요?”라고 하니 오빠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 후 1958년 겨울에 남편이 경기도 장원의 개척 전도사로 발령받게 되면서 저도 그곳에서 전도 활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건물이 없어 한 교인의 가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초등학교 선생님을 비롯해 사람들이 전도되면서 벽돌로 지은 아담한 제단을 마련했습니다. 주일학생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 말씀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고, 하얀 고무신이 너털너털 닳도록 심방을 다니며 참으로 신나고 즐겁게 전도를 했던 때였습니다.
충남 서산의 부석제단에 있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소사신앙촌에 간 사이, 한 교인의 두 살 난 여자 아기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제가 그 집에 가 보았습니다. 죽은 아기의 부모와 큰집 친척들이 제단에 나오기는 해도 그다지 열심히 믿지 않았는데, 천주교를 믿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어린 아기이니 관도 마련하지 않고 얼른 장례를 치르려고 했습니다. 저는 아기도 똑같은 생명인데 그렇게 허술하게 할 수 없다고 설득을 해서 아기에게 입힐 수의와 작은 관을 마련하게 했습니다.
제단에 나오는 그 집 식구들이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제가 생명물로 시신을 씻겼는데, 아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제가 시신을 다루는 것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뻣뻣하게 굳었던 시신은 생명물로 씻은 후 팔다리가 노긋노긋 움직이면서 함박꽃같이 뽀얗게 피어났습니다. 쌔근쌔근 자는 것같이 예쁜 아기를 어떻게 땅에 묻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죽은 아기가 살았을 때보다 더 예쁘다며 고마워했고, 열심히 믿지 않던 그 집 식구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분명히 깨닫게 되면서 한층 열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여러 제단을 다니면서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거나 환자가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낫는 일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 어디서나 누가 봐도 분명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전도를 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구원의 길을 걷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2003년 봄에는 당숙모가 노환으로 숨을 거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비록 제단에 다니지 않으셨지만 고인의 아들 중 제가 중학교 때 전도한 정칠영 승사(동인천교회)와 상의하여 우리식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면 고인도 복을 받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불교를 열심히 믿는 다른 친척들이 반대했지만 어렵게 설득해 동생과 저의 주장대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의 장례반 권사님들이 오셔서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기셨는데, 90세가 넘은 고인의 얼굴이 뽀얗고 예쁘게 피어나면서 주무시는 듯 너무나 편안해 보였습니다. 특히 불교 신자인 고인의 큰며느리는 우리 교인들이 한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고 정성 들여 시신을 씻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시신이 어쩌면 저렇게 편안하고 예쁠 수가 있냐며 나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꼭 저렇게 해 드려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반대하는 친척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확실히 보여준 일이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주신 은혜만큼 아름답게 변화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이지만 지금도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그 뜻을 알기에 한 걸음씩 힘차게 나아가려고 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죄로 더럽히지 않고 깨끗하고 맑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