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를 위해 활발히 움직였던 시간

신앙의 발자취 ③
발행일 발행호수 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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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배 전직관장/서대문교회

하나님께서 매 주일 서울, 인천, 소사, 덕소 등 10여 제단을 순회하시며 예배를 인도하실 때였습니다. 영천에 시무하던 저는 대구 관장님과 함께 추풍령 휴게소를 지나가시는 하나님을 몇 차례 뵈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깜빡깜빡 신호를 보내며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차를 향해 인사드리면 창문을 열어 축복해 주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새벽 3시에 기장신앙촌을 출발하여 밤중에 신앙촌에 돌아가실 때까지 3,000리가 넘는 긴 거리를 오가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1976년 1월 16일에 경주로 발령받은 저는 6월 26일에 부산1중앙으로 이동 발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던 큰 제단을 맡게 되어 두렵고 떨렸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부임 후, 성가대를 조직하고 중고생을 위해 국어, 영어, 수학 교사진을 구성해 방과 후 과외 교실을 열었습니다. 매주 생화로 꽃꽂이를 하고, 청년회 주관 바자회를 열었으며, 부산 시내 체육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여 교회 내 단합과 청년 활성화를 도모했습니다. 또한, 특별전도집회(76.12.1~3), 청년 신앙대강좌(77.7.28~29), 부산지구 연합전도대회(78.11.5~8), 학생 신앙 연수회, 반사강습회, 매월 전국 연합부인회 집회(홍영표 권사 주관), 주교 여름 신앙학교 등을 개최했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교인들의 환한 얼굴과 전도를 위해 기쁘게 달려왔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부산 시내 체육대회에 참가한 부산1중앙 축구팀과 유년부 어린이들

제2회 전국 교역자 및 교인 공로자 표창식(1977년)에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직접 메달을 걸어 주셔서 더욱 기쁘게 일에 매진 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 1월, 부산시 서구에서 분리 될 사하구에 사하전도관을 개척하여 개관예배를 드렸습니다. 돌아보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던 그 시절이 가장 그립고 보람됐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1980년 5월 7일에는 대구2중앙에 부임하여 다음 해 9월 1일에 제단과 사택 보수공사를 마치고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이후 대구2중앙은 대구 여성회 제단이 되었고, 1982년 12월 15일 저는 달성 지관으로 이동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1983년 2월 25일에는 서울 7중앙 부관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는 2개 팀으로 나누어 매일 서울 시내 전 지역을 심방하며 하루에 토큰(동전모양의 시내버스 승차권) 20개가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활동했습니다.

임 전직관장이 작성한 심방일지에는 날짜와 동행자, 심방한 사람 명단, 심방내용 등이 적혀있다.

또한 학생과 청년들의 말씀 공부를 위해 교재 및 교안을 작성하고 교육에 힘썼습니다. 매년 청년 연수회를 개최하고 매월 ‘청년의 터’를 발행했으며, 중부지역 체육대회를 위해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배부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학생 심방에 집중하였고, 저녁에는 강북지역 장년 심방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 주신 분들은 아직도 제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1985년 3월 7일, 저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휴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후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 배운 근면, 자주, 자립정신이 밑거름이 되어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2000년 1월 24일, 아내(故 진정란 권사)가 54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고에 시달려 몹시 고통스러워하다가 나중에는 먹지 못해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서울8중앙관장님께서 입관, 발인, 하관까지 모든 장례 절차를 주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이후였지만 기장신앙촌에서 가져온 생명물로 입관한 후, 고인의 온몸이 환하고 곱게 피어 살이 오르고 평온한 모습이었습니다. 입관 당시 보지 못한 누이동생이 가족들에게 “고인이 어떤 모습이었나요?”라고 묻자, 교회 장로인 형님은 “화장을 해서 얼굴이 아주 환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생명물의 권능을 모르는 형님의 눈에도 화장을 해서 피었다고 생각할 만큼 환하게 핀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던 모양이었습니다. 또한 경인지역 학생관장님들은 고인의 사진이 미소 짓고 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생명물의 권능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2년부터 10여 년간 대학에서 서예 최고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여 하나님 말씀(경전)이 발간되었을 때 먹으로 쓴 필사본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붓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진하며 써 내려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무엇 하나 제 힘으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여생을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쓰이기를 바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자유율법을 지켜 그날에 빛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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