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을 느끼던 순간(이달용 관장 / 여수교회)

크신 하나님의 권능을 다시 깨달아
발행일 발행호수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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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달용 관장 / 여수교회

나는 1955년 7월 한강백사장 집회부터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하였다. 집회 첫날부터 기성교회 집회와는 100% 달랐다. ‘마음의 문을 열라’는 하나님의 간곡한 호소가 나의 심금을 울렸다. 예배당 안에만 들어오면 구원받았다고 하는 목사들의 설교와는 차원이 달랐다. 나는 기도 목표를 ‘저 분이 진짜 하나님인지를 알아야겠다’는 데 두었다. 하나님을 따르는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의 기도는 더 간절해졌다.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열어주시고 구하는 자에게는 주신다는 말씀이 있는데 왜 나에게는 이슬성신이 보이지 않는지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러던 중 1960년 소사 오만제단 준공 집회 마감을 이틀 앞두고 나는 안개 덩어리의 이슬비가 하나님 머리 위에 자욱이 내리는 것을 목격하였다. 나는 그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많은 환자들이 ‘병이 완치되었다’고 기뻐 뛰는 것을 생생히 목격하였다. 어찌 나만 보았겠는가? 2000여 명이나 되는 목사들도 그 당시에 체험하고 목격한 생생한 이슬성신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그길로 나는 고향 충북 중원군 신의면 화석리에 내려와 아버지와 산에서 목재를 가지고 와 제단을 짓고 30명을 전도하였다.

그 후 나는 교역자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1980년 이제야 하나님께서 본인의 실체를 밝히실 때에 ‘진짜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후로 인천교회에 시무할 때에 나는 교회 수리를 하면서 교인들과 매주 향취를 맡았었고 대전교회에서도 수리를 하고 나니 인천에서 맡았던 향취가 났다.

나는 올해에 이슬성신의 체험을 두 차례나 하였다. 지난 2월 성신사모일 때 시온산에서 내려온 후, 죽을 먹으러 3층 식당으로 갔을 때였다. 죽을 퍼주는 곳을 보니 심이사장과 중부와 남부 두 총무의 머리 위에 축구공만 한 이슬성신 덩어리가 환하게 밝은 것이 떠 있었다. 그것이 빙빙 돌더니 확 터지면서 아래로 산산히 흩어졌다.

또 지난 4월 남자 축복일에 죽을 먹으러 갔더니 지난 성신사모일에 보았던 광경이 똑같이 나타났다. 벌써 50년 전인 소사 오만제단 준공 예배시에도 하나님 머리위에 똑 같은 광경을 목격했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슬성신이 임하는 광경이었다. 나는 우리가 매월 축복일 때 먹는 죽이 왜 귀한 것인가, 왜 ‘축복죽’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 죽 안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이슬성신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달에 대전에서 여수로 발령을 받았다. 일찍이 은혜를 받고 감람나무와 이슬성신의 은혜를 전파하는 교역자의 뜻을 세워 고난과 영광의 길을 달려온지 어언 42년, 나는 이제 이 고귀한 여정을 마무리 할 단계에 서 있는 것 같다. 부족한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교역생활을 잘 마무리 짓고 여수교회의 수리공사도 잘 마무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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