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곧 감람나무 하나님이심을 깨닫다
박금석 권사(3) / 소사신앙촌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1998년이 되었을 때 저는 제단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먹고사는 데 얽매여 세월을 다 보냈구나.’ 하면서 그동안 제단과 멀어졌던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은혜를 받던 때가 제 생애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즈음 저희 집 앞에 기성교회가 새로 지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딘가에 전도관도 저렇게 있을 텐데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하며 애를 태웠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큰딸이 “엄마, 저 교회에 가고 싶어서 그래요?”라고 하기에 “아니, 엄마는 전도관에 가고 싶단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기성교회에 은혜가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혼자서 예배를 드렸으면 드렸지 기성교회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앙촌에서 생활하며 은혜를 받던 때가 너무나 그리웠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오랫동안 제단과 멀어져 있었는데 다시 신앙촌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혜를 받고 기뻐했던 일들이 떠오를 때면 ‘한 번이라도 신앙촌에 가고 싶다.’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먹고 사는데 얽매어 귀한 시간 보내고
그동안 제단과 멀어진 시간이 안타까워
은혜 받던 때가 가장 소중히 느껴지며
‘신앙촌에 가고 싶다’ 눈물 흘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저희 집에 찾아와 포장 두부를 사라고 하여 큰딸이 그 두부를 사서는 맛있게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가 혼자 있을 때 그 아주머니가 다시 오셨는데 저는 딸아이가 맛있게 먹던 생각이 나서 두부를 샀습니다. 그런데 돈을 드리고 두부를 받아 보니 포장지에 신앙촌 마크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익은 마크를 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제가 두부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자 아주머니도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겨우 마음을 진정한 후 “아주머니는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소사신앙촌에서 왔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부는 부산에 있는 기장신앙촌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신앙촌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전부 물어봤습니다. 저도 소사신앙촌의 오만제단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반갑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당장 그 주 일요일에 오만제단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받아든 두부 포장지의 신앙촌 마크
두부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 흘려
신앙촌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당장 그 주일에 오만제단 찾아가
예배실에 들어서니 정면에 흰색 양복을 입으시고 안경을 쓰신 분의 존영이 있었습니다. 존영을 바라보면서 몇 년 전의 꿈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제 꿈에서 사진 속에 계시던 바로 그분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꿈에서 뵈었던 분이다!’ 하며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존영 속에 계시는 분이 제가 알고 있는 ‘감람나무 박태선 장로님’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영모님께서 안경을 쓰지 않으시고 젊으셨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존영 속의 모습이 영모님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뵈었을 때 영모님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저분이 영모님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이시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30년 만에 다시 찾은 오만제단에서 존영으로 하나님 뵈오니
초창기 때와 변함없이 `마음과 생각으로 죄짓지 말라. 구원을 얻으라`하시며
안타깝게 외치시는 그 음성이 제 마음을 울리는 듯 해
그때부터 오만제단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집과 가까운 서울 구의동 제단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녹음된 하나님의 설교 말씀을 틀어 주셔서 저는 열심히 말씀을 들었습니다. 초창기 때와 변함없이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말라.” 하시며 구원을 얻으라고 안타깝게 외치시는 음성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직접 체험했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면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감람나무이며 그분이 곧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차츰차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슬은혜로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제단에 다시 나온 1998년에는 천부교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경기를 보고 응원가를 부르면서 수십 년 전의 전도관 체육대회가 떠올랐습니다. 새하얀 운동복을 입고 달리시던 하나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하나님! 저는 오랫동안 떠났다가 이제야 제자리에 왔습니다. 앞으로 귀한 길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다짐했습니다.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며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은혜 허락해주심에 깊이 감사드려
오만제단에 다니게 되면서 교인 분들의 입관예배에 참석하여 그때마다 시신이 곱게 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봤던 분들 중에는 2009년에 돌아가신 도영순 권사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기 전에 고인의 피부색은 누런빛을 띠었는데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로 씻고 나자 아주 뽀얗게 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마와 눈, 코 주위가 환하게 피면서 마치 유리알을 닦아 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 보였습니다. 입술이 빨갛고 볼도 발그레한 모습이 너무나 곱고 예뻐서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유족들이 고인을 볼 때 한 번 더 고인의 모습을 봤는데 저도 모르게 “아이고 예뻐라!” 하며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신이 피는 것을 보면서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귀한 은혜를 받아 아름답게 피는 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노구산 정상에 있는 오만제단을 향해 올라갈 때면 성경 속의 ‘노아의 방주’가 떠오르곤 합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겨 있을 때 노아가 산꼭대기에 지은 방주처럼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천부교회는 막막한 이 세상에서 구원의 방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오만제단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곳에 불러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귀한 구원의 길을 따르며 가르쳐 주신 대로 하루하루 맑고 성결하게 살 것을 다짐해 봅니다.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