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받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

<신앙체험기 508회> 기장신앙촌 김애자 집사 2편
발행일 발행호수 2641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지난 호에 이어)

소사신앙촌에서 저는 전도사님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일과를 끝낸 뒤 목욕을 하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시끄럽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니 집안이 불이 난 것처럼 환한 것이었습니다. 전날 깡통 안에 초를 피우고 잤는데 심지는 다 타버리고 녹아버린 촛농에 불이 붙어 불길이 커진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야간 순찰을 돌던 경비원이 유달리 환한 저희 집을 이상하게 여겨 가까이 왔다가 초가 활활 타는 것을 발견하고 창문을 세게 두드린 것이었습니다. 자다가 깬 저는 너무 놀란 나머지 불이 붙은 초를 향해 ‘후!’하고 바람을 세게 불었는데, 오히려 촛농이 제 얼굴로 튀는 바람에 아파서 허우적거리다가 깡통을 넘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깡통 가득 녹아있던 뜨거운 촛농이 쏟아지며 치마에 엉겨 붙었고, 무릎 쪽에 심한 고통을 느껴 촛농이 들러붙은 치마를 들어 올리자 살이 치마와 함께 벗겨져 나갔습니다.

저는 안찰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염치 불고하고 하나님 댁으로 달려가 화상을 입었다고 말씀드리자, 잠시 후 하나님께서 나오셔서 화상 입은 곳을 손으로 톡톡톡 세 번 쳐주시고 “됐어. 이제 가봐”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그렇게 심했던 화상이 다 나았습니다. 주변에서도 어쩜 그리 빨리 나을 수 있냐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다들 놀라워했습니다.

당시 소사신앙촌에서는 저처럼 하나님의 축복으로 병을 고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축복해 주신 캐러멜을 끓여서 먹으면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났던 것이 금세 나았고, 다친 상처에 축복해 주신 솜을 붙이면 빠르게 아물어서 병원에 갈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한 번 이유 모를 복통으로 쓰러졌을 때도 사람들은 저를 둘러업고 하나님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번처럼 손끝으로 배를 세 번 쳐주시더니 “이제 됐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배 속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집에 돌아올 때는 멀쩡하게 걸어서 올 수 있었습니다.

서울 청암동 이만제단에서 설교하시는 하나님 모습(1957년경)

이유 모를 복통에 쓰러졌는데 하나님께서 안찰해 주시자
고통이 감쪽같이 사라져 집에 갈 때는 걸어서 돌아와

시커멓고 비쩍 말라 있던 시신이 입관 예배 후
뽀얗게 피어나는 모습 보고 생명물의 권능을 다시금 확인

병원 입원 후 악몽에 시달려 생명물을 마시고 나니
이만제단에서 경험했던 대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시원해지며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아 눈물 흘리며 감사의 기도드려

1960년대 초반부터는 인천 등지에서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본격적으로 소비조합 활동을 하다가 고향인 안면도로 내려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이 전도관 가는 것을 반대하는 바람에 멀리 떨어진 전도관으로 몰래 예배를 드리러 가곤 했는데, 그렇게 남편의 눈을 피해 송탄전도관에 다니던 시절의 일입니다. 송탄전도관의 권사님 한 분이 돌아가셔서 교인들이 모두 모여 입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시신을 보는 것이 무서워서 입관 예배에 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용기 내어 입관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장례반 권사님들은 우선 고인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드린 후 생명물로 고인의 머리와 몸을 깨끗이 씻겨드렸습니다. 그리고 관장님과 교인들이 찬송까지 부르고 나니 고인의 모습이 놀랄 만큼 변해있었습니다. 시커멓고 비쩍 말라 있던 권사님이 뽀얗게 피어나 입술도 불그스름하니 정말 예뻐진 것이었습니다.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꼭 잠이 든 것 같았습니다. 시신을 아름답게 피게 하는 생명물의 권능을 본 저는 제가 가는 신앙의 길이 참 길이라고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1981년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도 크게 놀라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토록 놀라운 은혜를 내려주실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밖에 없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1990년 5월에 저는 기장신앙촌에 입주하여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식당에서 요리했던 경험을 살려 휴게실, 낙원식당, 통나무집, 맛길, 국밥집에서 근무하며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정성을 다했습니다. 사람들은 특히 제가 만든 꽈배기를 좋아해 줬는데, 은퇴한 지 꽤 되었음에도 가끔씩 “그때 집사님이 만들어줬던 꽈배기가 정말 맛있었는데” 하며 칭찬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괜스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쑥스러워질 때도 있곤 합니다.

저는 신앙촌에서 지내는 동안 밤하늘을 환히 밝혀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하얀 빛줄기가 공중에 떠서 밝게 빛나는 광경은 아무리 여러 번 보아도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 빛줄기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구나’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기도를 드렸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21년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저는 뜨거운 물에 다리를 데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하여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한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지고 간 생명물과 런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코로나19가 심했던 시기여서 가족들조차 면회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당분간 생명물 마시기는 어렵겠다는 아쉬움을 안고 잠이 들었는데 그날부터 시커먼 손 여러 개가 튀어나와 저를 잡아끄는 악몽을 꾸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악몽이 며칠간 계속되면서 제가 밤마다 심하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니 주변 사람들도 몹시 걱정스러워했습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신앙촌 의무실 선생님께 생명물을 가져다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렸더니 물통 한가득 생명물을 떠서 가져다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감사하다고 선생님께 인사드린 후 기쁜 마음으로 생명물을 컵에 따라 조심스럽게 마셨습니다. 그 순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시원해지면서 몸이 공중에 둥둥 뜨는 것처럼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이만제단 개관 집회에서 체험했던 은혜와 똑같았습니다. 몹시 감격한 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께 오랫동안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김애자 집사/기장신앙촌

제가 신앙촌에 온 지도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름다운 신앙촌에는 통유리창이 돋보이는 사진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이만제단 3층 건물을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저는 이만제단에서 받은 은혜의 순간들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한없는 은혜 가운데 걸어온 이 길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은혜받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귀한 일속에서 허락해 주시는 기쁨의 은혜를 알기에 은퇴한 후에도 종합식당에서 바쁜 일손을 도우며 즐겁고 활기차게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부지런하고 가치 있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죄짓지 않고 맑게 살아서 하나님께 ‘너는 참으로 너의 길을 힘껏 달려왔구나!’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