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축복해 주셔”

윤경희 권사(2) / 전농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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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권사/전농교회

윤경희 권사/전농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요즘 신앙신보에서 이만제단 특전대 기사가 나오면 반갑고 기뻐서 열심히 보게 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특전대로 활동하던 때가 떠올라 그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저는 그때 일이 뭉뚱그려져서 떠오르는데 어떤 분이 목사하고 성경 토론할 때 주고받은 말까지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맞아! 그랬지!” 하며 무릎을 치게 됩니다. 수요일이면 특전대원끼리 조를 짜서 기성교회를 찾아다니며 목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성경상의 감람나무가 누구인지 질문하면 목사가 답변을 못해 허둥지둥 도망치거나 버럭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는 광경을 자주 봤습니다.

한번은 진짜 은혜가 있는 길로 가야 구원이 있는데 목사님은 받은 은혜 있으시냐고 물었더니 목사가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불덩이가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온몸이 화끈하게 뜨거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불도 없고 햇볕도 뜨겁지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너무 뜨거워서 한참 쩔쩔매다 보니 차츰차츰 뜨거움이 사라졌습니다. 그제야 불성신을 받으면 온몸이 뜨거워진다던 말이 떠올라 내가 불성신을 받았나 보다 싶었습니다. 그때 토론하고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특전대원으로서 목사와 성경토론을 하는데
목사가 딱 부러지게 대답 못하고 얼버무려
그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온몸이 화끈하게 뜨거워져
이렇게 토론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불성신의 은혜를 주시는구나 깨달아

저녁마다 특전대원들이 성경 공부하는 시간이면 간식으로 빵을 먹는 재미가 컸습니다. 부드럽고 고소한 빵은 원효로 구제단에 기계를 들여서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돼 변변한 간식거리가 없어서 그랬는지 그 빵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제과공장에서 카스텔라가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을 보고는 신앙촌을 세우시기 전에 시범적으로 원효로에서 빵을 생산해 보셨구나 싶었습니다.

소사신앙촌 하면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1958년 무렵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한창 건설될 때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건설대로 들어간 특전대 친구가 귀한 거라며 손수건 한 장을 건네주는데, 받자마자 향취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손수건에서 나는 향취가 온몸을 감싸고 도는 것 같았습니다. 웬 향취가 이렇게 진동하냐고 깜짝 놀랐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강하게 축복해 주신 손수건이라 했습니다. 소중히 간직하며 저녁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아직 제단이 지어지지 않아 유치원을 임시 예배실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촌 건설대만 1,000명이 넘는 데다 저처럼 외부에서 찾아간 교인도 많아 예배실은 콩나물시루였고, 창문 밖에서 들여다보며 예배드릴 수 있는 자리를 잡은 것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쉭!”하고 축복하시는 순간
향취가 강한 바람처럼 불어와 진동하고

뽀얀 안개같은 것이 내리더니 바로 옆에
사람들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짙어져

그런데 한창 찬송을 인도하시던 하나님께서 창문 쪽을 바라보시며 “쉭!” 하고 축복하시는 순간 향취가 강한 바람처럼 불어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뽀얀 안개 같은 것이 내리더니 바로 옆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짙어졌습니다. ‘은혜가 그리워 찾아온 사람들 한 명도 빼 놓지 않고 축복해 주시는구나!’ 하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손수건은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당시는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시기 전이었고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라 하실 때였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은혜를 체험하다 보니 감람나무는 은혜를 주시는 존재라는 것이 마음 깊이 각인됐습니다. 훗날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 ‘그렇지! 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해할 수준이 안 되니 감람나무로 가르쳐 주셨구나.’ 싶었습니다.

특전대 친구가 귀한 거라며 건넨 손수건
받자마자 향취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온몸 감싸고 도는 것 같아 깜짝 놀라자
축복해 주신 손수건이라고 친구가 말해

저는 1962년 성동지관에서 주일학교 부장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특전대에서 활동하던 대학생들이 지방에 전도사로 발령 받아 나가고, 특전대 출신들이 동네마다 세워진 작은 전도관인 ‘지관’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맡던 때였습니다. 특전대 시절 길가에서 북을 치며 노방 전도하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귀여워서 곧잘 어울렸는데, 그런 경험 덕분인지 수줍음 많은 성격이지만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교회에 잘 나오고 바르게 자랄까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150명 남짓한 주일학생들 집을 구역별로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이 전도관에 나오지 않는 가정이 많았기 때문에 직접 찾아뵙고 예배드리면서 부모님과 친해지려고 했습니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는데 제가 주일학생 집을 다닌다 하니 성동지관 어른 분들이 애들 옷을 가져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작아져서 입히지 않지만 아직 새것 같은 옷을 들고 가니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교회 선생님이 오셨다며 과자도 내 놓고 과일도 내 놓으시며 반겨 주셨습니다. 아이들도 구역예배를 좋아해서 오늘 어느 구역에 간다 하면 온 동네 아이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여름신앙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찬송과 합창을 가르치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
또 바르게 예배드리는 자세를 익히게 하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 

주일학교에서 제일 큰 행사는 여름신앙학교였습니다. 저는 근무하는 회사에다가 오후에 출근한다고 미리 알려 두고, 오전에 신앙학교를 마치고 나면 블라우스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나서 새옷으로 갈아입고 출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신앙학교에서 찬송과 합창을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여름 햇볕에 그을린 아이들이 두 눈을 빛내며 찬송을 따라 부르는 모습이 그리 예쁠 수가 없었고, 저는 종로서적에서 새로운 합창곡집을 구해다 신나게 가르쳤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예배드리는 자세를 익히게 하고 싶어서 예배 시간이면 장난치지 말고 설교 말씀에 집중하라고 했는데, 지금 중년이 된 교인들이 그때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이 잔소리 많이 해서 혼났다.”며 웃곤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보람 있었던 때를 꼽으라고 하면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일했던 시간을 말하고 싶습니다. 1995년 오십대 초반에 소비조합을 시작하며 나름 각오가 있었습니다. 초창기부터 귀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신앙 안에서 살지 못해 아쉬웠는데, 다른 소비조합 분들처럼 나도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 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물건을 꾸려 판매를 나가던 날은 겨울인데도 햇살이 유난히 따스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감사하게도 신앙촌 물건을 꼭 사고 싶었다는 사람들을 줄줄이 만나게 됐습니다. 그동안 서울 살아도 가 보지 못했던 동네를 누비고 다니며 방문 판매를 하다 2년쯤 지나 이문동에 아담한 신앙촌 상회를 차렸습니다. 제품이 좋아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신앙촌을 반가워하는 사람도 많아서 상회에 나가면 재미있었습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지 그때 알 수 있었습니다.

20년 동안 활동했던 소비조합을 정리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부끄럽고 죄송한 일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어제를 돌아보고 스스로 가다듬으며 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신 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자유율법을 지키며 맑아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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