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시간에 안개와 같이 뽀얀 이슬성신은 한없이 쏟아지고

김금순 권사(2) / 소사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75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지난호에 이어서>

1956년 11월 26일, 하나님을 모시고 영산포전도관 개관집회가 있었던 그날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개관집회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은 입추의 여지없이 예배실을 가득 메웠고 그래도 모자라 바깥에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뇌염 후유증으로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하던 셋째 아들이
하나님께 안찰 받은 후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걸어가자
전도관 다니는 것을 반대하던 시누이는 좋아서 춤까지 추고

저는 그때 다섯 살이던 딸 복심이를 데리고 갔는데, 예배 중에 아이가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무언가를 받아서 입에 넣고, 또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가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입에 넣느냐고 했더니, 하나님 계신 단상 쪽을 가리키며 거기서 하얀 눈이 자기한테로 날아와서 그것을 받아먹는다고 했습니다. 딸아이는 “얼마나 맛있는데요!” 하며 저도 먹어 보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입맛을 다셔 가며 맛있게 먹는 아이를 보면서, 그 하얀 눈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인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안개가 내린 것처럼 뽀얀 이슬은혜가 한없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예배실 천장과 벽에 진주 같은 이슬이 방울방울 맺힌 것을 보았는데, 목욕탕도 아닌 예배실에 물방울이 맺히다니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슬방울이 은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손수건에 그 이슬을 묻혀 보았더니, 순간 손수건에서 너무나 향기로운 향취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 손수건에서 나는 향취를 맡고 놀라워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은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산포제단에 오신 하나님께서 생명물을 축복해 주셨을 때 일입니다. 함석으로 만든 큰 물통에 하나님께서 “쉭! 쉭!” 하시며 축복하시자 손끝에서부터 달걀같이 하얗고 동그란 것이 나오더니 물통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물통 속의 물이 하얀 눈 덩이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축복하신 생명물을 작은 컵에 하나씩 받아서 소중하게 마셨습니다.
당시 저는 가정에 소홀한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면서 화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자동차 부속을 판매했던 남편은 번 돈을 노름으로 전부 탕진해 버려서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화병은 점점 심해져 가슴에 주먹보다 더 큰 덩어리가 만져졌고, 한 달에 두세 번은 그 덩어리가 치받고 올라와 숨을 못 쉴 정도로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약도 지어 먹었지만 백약이 무효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예배를 마친 후 제단에서 생명물을 한 컵 받아 놓고 기도드리는데, 어디선가 아주 향기롭고 맛있는 냄새가 맡아졌습니다. 그리고 생명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배가 어떻게 아픈지 그만 배를 움켜쥐고 자리에 엎드려 버렸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제단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가슴에 있던 덩어리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먹보다 더 크게 가슴에 뭉쳐 있던 덩어리를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병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그 후에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산포제단에 계속 다니면서 저는 자꾸만 기쁘고 즐거워졌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반갑고 좋아서 그 사람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해 주고 싶었고, 밥을 먹을 때나 일을 할 때나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운 생활로 늘 찌푸렸던 제가 은혜를 받으면서 감사와 찬송이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순간이라도 아이들에게 곱지 않은 말을 하거나 화를 냈을 때는 그 기쁨과 즐거움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고 다시 은혜를 받으려면 오랫동안 간절히 매달려야 했습니다. 죄를 짓는 순간 성신은 떠나신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1959년, 셋째 아들 개덕이가 네 살 때 일입니다. 애가 갑자기 열이 펄펄 끓고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서 영산포 중앙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뇌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뇌염 후유증으로 아이는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체를 전혀 움직이지 못해 대소변을 받아 내야 했고 팔이 덜덜 떨려 숟가락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평생 동안 반신불수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저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후 소사신앙촌으로 아이를 업고 가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먼저 저에게 안수를 해 주셨는데 하나님의 손이 제 머리에 닿는 순간, 아이 때문에 슬프고 괴로웠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음이 너무나 가벼워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의 두 눈과 배를 안찰해 주셨고, 다음 날 한 번 더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찰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엄마 신발 사 주세요. 걸어갈래요.” 하더니 거짓말처럼 제 눈앞에서 걷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광경을 옆에서 계속 봤던 박정일 장로님은 놀라워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새 신을 신고는 방긋방긋 웃으며 걸어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저는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오셔서 아이 다리에 “쉭, 쉭” 하시며 축복해 주시고 안찰을 해 주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영산포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영적으로 안찰해 주셨습니다.
영산포역에는 아이들의 큰고모와 큰어머니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분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제가 아들에게 안찰을 받게 한 것도 몹시 못마땅하셨고, 그래서 그날 저에게 큰소리를 내려고 단단히 벼르고 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들을 보고 두 분은 멍한 표정이 되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안찰 받고 나았어요.” 하고 말했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느냐며 놀라워했고 아이의 큰고모는 좋아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녔습니다. 새 신을 신고 좋아하던 아들은 오십한 살인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저 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계속>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