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이 물러가는 신기한 안찰의 권능을 체험하다
임옥산 집사(2) / 기장신앙촌지난호에 이어서
1957년 11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을 건설하면서 저와 언니는 건설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서 한 일이 땅에 자갈을 골라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임시로 마련된 숙소에서 자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주무시지 않고 계속 축복하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 은혜 속에서 포근히 쉴 수 있었기에 건설대원들 모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건설대 식당으로 옮겨 일하다가 공장이 다 건설된 후 수예 공장에서 누비이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된 후에도 수예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때 누비이불, 재봉 수를 놓은 수 이불 등 신앙촌 이불이 굉장히 인기였습니다. 매일 아침 매장에서는 이불 한 장이라도 서로 가져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저희들은 더욱 바쁘게 일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워낙 몸이 약해서 어머니가 늘 걱정했는데, 덕소신앙촌에 온 뒤부터는 밥맛이 좋아지며 차츰차츰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창 젊을 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던 그 시절은, 지금 돌아봐도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1970년 기장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저희 가족 모두 입주하게 되었고 저는 계속 수예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1983년경 한번은 제가 열이 심하게 오르며 아픈 적이 있었습니다. 약을 지어 먹었는데도 고열은 좀체 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밥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넘기기가 힘들어서 저는 점점 말라 갔습니다.
그러던 중 안찰받을 기회가 되어 언니의 부축을 받아 안찰을 받으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배를 안찰하시다가 왜 이렇게 말랐냐고 물으시자, 옆에 있던 소비조합장이 “열병을 앓았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저에게 일어나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일어날 수가 없어서 주위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났더니, 양팔을 들라고 하신 후 양쪽 옆구리를 한참 동안 안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됐다!”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저는 벌떡 일어나 섰습니다. 몸이 너무나 가볍고 힘이 나서 저도 모르게 일어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면서 축복하신 사탕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안찰받으러 갈 때는 다리에 힘이 없어 언니의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걸었는데, 나올 때는 혼자 힘으로 가볍게 걸어 나왔습니다. 안찰을 받으러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런 저를 보고 다들 놀랍다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다시 수예 공장에 나가 일한 것은 물론이고, 그 후로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등 오히려 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90년 2월 하나님께서 낙원으로 가시고, 그해 10월에 저희 어머니(오신복 권사)께서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많이 쇠약해지셔서 3년이나 누워 지내셨는데 편찮으신 중에도 정신을 맑게 가지려고 노력하셨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이슬성신을 허락하시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깊은 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아주 조용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저희 집에 사람들이 모여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장례반 권사님이 생명물을 솜에 적셔서 어머니 얼굴에 덮은 후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셨습니다. 다 씻기고 나니 온몸이 산 사람처럼 보들보들해서, 마치 주무시는 분한테 옷을 입히는 것처럼 팔과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움직여 가며 수의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덮어 놓았던 솜을 걷는 순간 사람들 모두 탄성을 질렀습니다. 저도 제단에 다니며 시신이 피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어머니처럼 예쁘게 핀 시신은 처음이었습니다. 뽀얗게 핀 얼굴은 하얗다 못해 투명해서 갓난아기의 피부도 그만큼 곱지는 않을 것 같았고, 빼빼 말랐던 얼굴에 살이 올라 너무나 예뻤습니다. 동그란 그 얼굴만 보면 꼭 열여섯 살 소녀 같았습니다.
제가 “어머!” 하고 탄성을 지르자 옆에 있던 권사님들이 “어쩜 저렇게 잘 피셨니? 어머니 돌아가셨어도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아쉬움과 슬픔으로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는데, 곱게 핀 어머니를 보니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명수 승사님도 어머니를 보시고는, 지금까지 본 시신 중에 제일 잘 피셨다면서, 하나님께서 육을 벗으신 뒤에도 이렇게 은혜를 주신다며 너무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귀한 은혜 속에서 어머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지금까지 이 길을 따라오면서 느낀 점은, 죄는 노크도 없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고, 성신을 간직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은혜를 쏟아 버리는 이 못난 죄인.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지금도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에 가슴을 펴고 희망을 가져 봅니다. 그 은혜를 소중히 간직하면서 내면과 외면의 모습이 모두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오늘도 하나님 앞에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