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비방에 굴하지 않고 참길로 향한 체험담

발행일 발행호수 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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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제단

서울 이만제단에서 설교하시는 하나님 모습 (1957년)

◆ 목사님이야말로 이단 아닙니까?  저는 참 하나님께서 계신 길로 가겠습니다.

저는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에서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부흥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1956년 전주에서 열린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서 놀라운 광경을 봤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힘껏 내려치시자 놀랍게도 장로님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믿기지 않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아주 지독하게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지금 죄 타는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데 맡은 사람은 손을 드세요.”하고 하시자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고 저도 손을 들었습니다.

김춘옥 집사

김춘옥 집사

휴식 시간에 집회장 입구에 나와 보니 김성여 목사가 엮은 「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경험」이란 책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 책 5페이지에는 “입을 열면 그의 입에서는 불이 터져 나온다. 나는 ‘불의 사자’라는 말을 말로만 들었는데 박태선 장로의 입에서 정말 불이 나오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라고 써 있었습니다. 저는 감격해 무릎을 쳤습니다. ‘아! 내가 본 불이 환상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이 불은 물체를 태우는 불이 아니고 심령의 죄를 태우는 성신의 불이기에 죄 타는 냄새가 났구나.’ 하고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회장에 돌아와 예배드릴 때 천막 안에는 자욱한 안개처럼 이슬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백합꽃 향기보다 더 짙은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이때 박 장로님께서는 성경에 삽입된 이슬성신과 향취에 대한 구절을 읽으시고 “이 은혜의 향취와 이슬성신을 본 사람은 곧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은혜가 그리워 전에 다니던 장로교회에 나가지 않고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주 전도관으로 나갔습니다. 이 사실을 장로교회 이효섭 목사가 알고 저를 설득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때 저는 이 목사와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는 저를 보자마자 “자네 이번에 박 장로 집회에 갔다 왔지? 그 이단 따라가면 지옥 가, 알겠나?” 하고 고성을 질러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중한 어조로 “박 장로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바를 질문할 테니 분명한 답을 해 주세요. 병든 사람이 의사를 찾아가듯, 우리가 교회에 나가 믿는 목적은 죄라는 병을 고침 받고 구원을 얻고자 함인데, 사람의 죄를 어떻게 사함을 받는지 말씀해 보세요.” 하자 이 목사는 아무런 답을 못하고 오히려 “그렇다면 박 장로는 어떻게 하던가?” 하고 반문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안수, 안찰 하시면서 처음 보는 사람의 죄를 낱낱이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신의 불이 임하여 사람의 죄를 태울 땐 죄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 죄가 소멸된 후에는 한없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은혜와 권능도 없으면서 구원을 준다고 하면 목사님이야말로 이단이 아닙니까? 이제 저는 참 하나님을 뵈옵고 구원 얻기 위해 전도관에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하자 이 목사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가 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전주전도관에 다니며 하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정수길 승사

정수길 승사

◆ 얼마나 악의적이고 허무맹랑한 비방인지…

저는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세광 장로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교회에서 “전도관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이다.” “생수는 박 장로가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이다.”하고 비방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같은 과 친구인 재환(故 오재환 권사)이는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며 저를 전도하려고 했는데, 어느 일요일 재환이가 청암동에 있는 이만제단으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한강 변 언덕에 우뚝 세워진 이만제단의 위용은 실로 대단했으며, 그곳에 수만 군중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모여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전도관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만 들었던 저는 마음 한편으로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재환이는 계속 전도관에 다니자며 더욱 적극적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저는 친구의 권유대로 전도관에 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아 보라는 재환이의 권유에 못 이겨 중구 갑구 제단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현관 양옆에 줄지어 서 있는 물통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관에 놓인 그 물은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이었습니다.

예배실 안에 들어가서도 좋은 향기가 계속 진동하여 재환이에게 이야기했더니, 재환이는 그 향기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전도관에서 향수를 뿌려 놓고 사람들을 미혹한다던데?’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향수를 뿌린들 그렇게 코에 쏟아붓는 것처럼 진동할 수는 없을 것 같았고, 그 좋은 향기는 여느 향수와는 차원이 다른 냄새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안찰하실 때 저의 고집이 센 것을 지적하셨으며 “성경을 지독히 파는군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곁에서 보신 것처럼 다 알고 말씀하시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예전 같으면 화를 냈을 만한 일이 생겨도 속에서 화가 전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저는 재환이와 함께 경기도 부천의 소사신앙촌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신앙촌 전경과 거리를 다니는 신앙촌 사람들의 환하고 밝은 표정, 그리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또한 주인 없는 상점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서 ‘이곳이야말로 죄를 멀리하는 생활을 하는 곳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전도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기성교회와 언론에서 말하는 전도관과 실제 전도관은 180°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 운운하던 생명물이 실제는 물통을 향해 “쉭! 쉭!” 하고 축복하시는 것임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허무맹랑한 비방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께서 아시고 심하게 반대하셨지만 저는 제 뜻을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전도관에 대해 비방하는 말만 들으시는 아버님을 보면서 저의 지난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구원의 참길을 깨달은 이상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길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덕웅 권사

김덕웅 권사

◆ 거짓 비방과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열여섯 살 무렵 경상남도 무안면 양효리 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전도사님은 서울대학교를 다니다가, 박 장로님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이 귀한 체험을 다른 이에게 전파하기 위해 전도사로 나오게 되었다는 분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전도사님에게 공부를 배우며 전도관에 제법 재미를 붙였습니다.

하지만 전도관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동네 어른들은 전도관 금지령을 내리고 갖가지 험담을 하며 반대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하나님께서 정치적 박해로 영어의 몸이 되시자, 주위 사람들은 제게 신앙촌과 전도관은 전부 망했다며 저와 전도관을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받은 은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체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견디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저녁, 이제는 그만둬야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수요일예배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저녁따라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칠흑같이 캄캄해서 무서움은 더욱 심했습니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쭈뼛 서고 몸에는 식은땀이 배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만 가면 이렇게 다니는 것도 끝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산길을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코에서 진한 향취가 진동하면서 등허리가 후끈해지더니 이상하게도 그렇게 무섭던 감정이 싹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에는 평온함과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입에서는 찬송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계속해서 맡아지는 향취가 혹시 길가에 만발한 꽃향기가 아닌가 하여 맡아 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제단에 도착하여 무릎 꿇고 예배를 드리는 내내 후끈후끈한 기운이 느껴지는 동시에 향취가 진동하였고, 그 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나 퇴비를 치울 때도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그다음 일요일 다른 교인들에게 제가 받은 체험을 이야기하였더니 그게 바로 향취와 불성신의 은혜를 받은 것이라고 설명해 주며, 힘들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말로만 듣던 은혜를 직접 체험한 저는 너무나 기뻐서 이를 가족과 동네 사람들에게 열심히 증거하였고 주위 사람의 핍박에도 아랑곳없이 제단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계속해서 비방을 하니, 하루는 신앙촌이라는 곳이 지금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생긴 곳인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962년 가을 무렵 난생처음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덕소신앙촌에 도착해 보니 처음 본 순간 이곳이 바로 지상 천국이 아닌가 할 정도였습니다.

덕소신앙촌에는 아름다운 서양식 2층 주택들이 한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이곳저곳에 들어서 있었고, 군데군데 우거진 숲 속에서는 찬송가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은은하게 퍼지던 찬송가 539장 ‘수정 같은 맑은 물결 보좌로써 흐르는~’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고향 사람들이나 언론 매체를 통해 듣던 신앙촌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신앙촌과 전도관에 대한 그 많은 악평과 비방이 그야말로 중상모략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더욱 신앙생활에 더욱 힘을 쏟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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