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이 되신 하나님

발행일 발행호수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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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행하신 가장 놀라우신 일의 하나는 누구도 밝히지 못하였던 예수의 정체를 밝히신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의 잘못된 구원관을 회의(懷疑)하고 그 가르침의 진위(眞僞)를 의심하지 못하였고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위선의 흠결(欠缺)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인류는 예수의 그릇된 구원관으로 말미암아 자신은 구원을 얻는 줄 알았지만 실은 지옥으로 떨어지면서도 변함없이 그를 ‘구세주’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길이요 진리’라 하면서 자신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배당 문 안에만 들어오면 구원을 얻는 것으로 착각케 하였다. 그러나 구원은 오로지 하늘나라,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허락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자격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오셔서 비로소 깨우쳐 주셨다. 그리고 2천년 동안 잘못된 신호를 보냄으로써 인간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한 책임은 바로 인류가 ‘구세주’라고 믿었던 예수에게 있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오셔서 명확히 밝혀 주셨던 것이다.

사실 성경에도 구원은 예배당 문 안에 들어와서 믿기만 하면 얻는 ‘거저먹기’가 아니라,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즉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에게 이슬성신을 내려주셨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인간의 구원을 가능케 해주시는 특혜를 베푸신 것이었다. 구원이 불가능하게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이슬성신으로써만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으로 인간의 죄를 소멸시키는 특혜를 베푸시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끝없는 희생으로야 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슬성신을 주시면 그 새 생명을 받는 인간에게는 끝없는 의(義)가 되지만, 그 대신 인간의 죄를 떠맡으시는 하나님께는 끝없는 고통이 된다. 하늘 위의 신으로만 존재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이 고통을 당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똑 같은 육신을 입으신 감람나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걸머지심에 있어서 육신의 고통을 당하시는 희생을 피하실 수가 없었다. 성경에 이른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희생이 되시는 ‘어린양’이란 이를 두고 기록된 것이다. ‘어린양’의 희생이란 인간에게 이슬성신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대신 인간의 죄를 걸머지시는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필설(筆舌)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말한 것이다.

오늘 맞이하는 성신사모일은 모든 사람에게 예수의 그릇된 구원관을 지적하여 구원의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시고, 인간의 죄를 걸머져 주신 ‘어린양’ 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을 기리고 사모하는 날이다. 이 날을 맞아 우리는 그렇게도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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