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지상주의 자성론

제성호 / 중앙대학교 법대 교수법학 박사
발행일 발행호수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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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성호 / 중앙대학교 법대 교수법학 박사

역사적으로 민족주의는 영토와 주권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출현과 함께 한다. 이후 민족주의는 대체로 체제통합의 우파이념으로 인식됐다. ‘자본주의적 민족주의’란 용어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사회주의자와 직업 혁명가 등 좌파세력이 탈식민주의를 주창하며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저항적 이데올로기’로 적절히 활용하여 한 때 민족주의가 최고의 가치요,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잣대로 된 적도 있었다. 어느 새 민족주의는 좌우를 넘나드는 이념이 돼 버렸고 일부 국가에선 민족주의가 폐쇄적 자립노선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때문에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 ‘민족’은 더 이상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뉴 밀레니엄을 연 21세기, 탈국경의 세계화를 구가하는 지구촌 시대에는 세계주의와 보편성, 그리고 대외개방이 생존과 번영을 가능케 하는 합리적 선택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민족주의의 완전한 폐기는 시기상조이다. 주권의 몰락, 곧 민족국가가 완전히 소멸하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는 한 여전히 민족주의는 국민통합 내지 민족정체성 확립의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할 공산이 크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에게 있어 한 핏줄이란 의식과 뜨거운 정은 각별하다. 지난 60년의 분단사는 강한 민족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이를 강화시켰던 시기였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같은 민족이란 의식, 곧 민족주의는 남북한이 통일을 지향하며 미래의 언젠가 이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주제가 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즈음 북한과 좌파들이 주창하는 민족지상주의 혹은 폐쇄적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하다.

북한이 이른바 ‘6·15시대’의 기치로 내걸고 있는 ‘우리민족끼리’ 이념은 ‘반미자주’의 닫힌 사고, 무조건적인 통일지상주의와 유착돼 있다. 그것은 ‘자유의 확산’을 억제하고 ‘체제가치의 동질화’를 도모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게다가 ‘우리민족끼리’의 ‘자주노선’은 국익창출의 모델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신식민주로 매도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침탈하는 도구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나치게 편협한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점에서 민족과 민족주의를 소중히 여기고 가꾸면서도 세계화 추세에 맞게 ‘국제주의’ 및 ‘보편주의’와 조화를 기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그것은 곧 ‘열린 민족주의’의 채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21세기에 ‘글로벌 한국’으로 우뚝 서고, 국익 극대화를 통해 한민족의 번영을 이룩하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인도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만들고, 무리없이 남북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유효적절한 선택이라고 하겠다. 개방적 민족주의는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이들의 협조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족주의는 뜨거운 감성이 아닌 차가운 이성으로 접근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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