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과 대처의 리더십
장병옥/한국외대 정치학 박사소신과 신념의 지도자였던 레이건은 일생을 통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어떤 반대가 있다할지라도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자신의 결정이 국민의 다수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손해와 희생을 감수할지라도 과감하게 실행했다.
1981년 8월, 미국 공항 관제사들이 근무단축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연방법에 의하면 국가 안보와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공항 관제사들은 파업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레이건은 그들에게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모두 해고한다는 최후통첩장을 보냈다. 그러나 파업 관제사들은 레이건의 강경책에 맞섰고, 레이건은 48시간 후 13,000여명을 가차 없이 해고했고, 재취업도 금지시켰다. 그 후 미국에서는 불법 파업은 자취를 감췄다.
그의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요인은 진정성이었다. 진정성이 담겨 있는 정책에 국민이 신뢰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 오바마가 새삼 레이건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리더십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지지이다.
다음으로 레이건 대통령과 유사한 리더십을 발휘한 영국의 대처 총리에 대해 알아보자. 대처 총리는 1979년 최초 여성 총리가 되어 세 차례 연임에 성공하며 영국을 이끌었다. 대처 총리는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대처리즘’이라 불리는 그의 경제정책은 긴축재정과 민영화, 복지정책의 축소를 통해 작은 정부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석유·항공·항만·통신·가스 등 국영기업의 대대적인 매각 작업에 저항하는 어떤 반대에도 굴하지 않는 그의 강인한 모습은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1984년 영국은 만성적자 탄광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광산노조 파업이 시작됐다. 대처 정부는 파업에 굴하지 않고 불법행위자 10,000명을 체포했다. 결국 탄광노조는 정부의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파업 1년 만에 백기를 들었다. 1년 가까이 거리 투쟁에 나섰던 노조원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걸핏하면 파업으로 영국 산업현장을 마비시키며 경제를 병들게 했던 전투적 불법 파업은 재발하지 않았다. 그 후 영국은 적자 사업장 폐쇄와 민영화로 장기침체에 빠졌던 ‘영국 병’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총리 당시의 파업 쟁점은 한국 철도노조 파업과 닮았다. 최근 국내 경기침체와 친북좌익 세력의 공세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국민들도 대처 및 레이건과 같은 강력한 ‘원칙의 지도자’를 갈망한다. 철부지 김정은의 핵전쟁 협박에 굴하지 않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제논리를 소신껏 펼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협박과 공권력을 무력화시켜 온 전투적 노조의 불법파업, 그리고 미-중-러-일 4강 외교에 균형과 조화를 살려 통일기반을 닦아야 하는 대내외적으로 2중3중 난제에 직면하여, ‘원칙’과 ‘비타협’의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위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