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강대국 정치와 한국
동아시아 지역에 강대국 정치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19세기에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다. 청일전쟁 후 전리품을 러시아의 협박에 빼앗기고 절치부심하던 일본은 영국을 배경으로 러시아와 전쟁했다. 그러다가 결국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초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군비경쟁과 제3세계에서의 영향력 경쟁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끝나고 한동안 잠잠하던 강대국 정치가 동아시아에서 부활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그 막강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쟁을 조기종결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며 국력을 허비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로 크게 체면을 구겼다. 반면 중국은 같은 해 베이징 올림픽으로 그 부활을 세계에 알렸다.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이제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표방한다. 미국에 버금가는 국제정치적 지위를 요구하는 것인데, 중국이 좀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고 그를 위해 좀 더 과격한 정책을 취하더라도 용인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일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동안 일본은 그에 안보를 맡기고 평화애호국, 개발원조국의 역할에 자족하며 이류 국가를 자임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도 그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랬다가는 영토분쟁을 포함한 온갖 현안에서 끌려다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양국이 일본명 센카구(尖閣), 중국명 댜오위(釣魚) 섬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을 가열시키고 호전적인 언사를 교환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영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외교적 분쟁에서 밀리면 영향력 경쟁에서 밀린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향후 이를 둘러싼 양국 사이의 갈등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강대국 정치의 피해를 입었던 한반도다. 그 결과 주권을 잃고 그 결과 해방되고 그 결과 남북이 분단됐다. 이제 강대국 정치가 재연되면 그 분단의 극복이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물론 강대국 정치가 약소국의 영토와 주권을 마구잡이로 강탈하던 구시대적 행태로 재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제기구와 제도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온갖 현안에서 법과 원칙보다는 힘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강대국정치는 지역 내 상대적 약소국인 우리나라에 항상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안으로 핵심적인 이익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밖으로 원칙 있고 절제 있는 외교적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외교의 지평을 넓혀 다자주의의 원칙를 다지는 한편 같은 입장에 있는 국가들과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