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피델 카스트로(85)는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한복판에 우뚝 선 풍운아였다. 쿠바혁명으로 시작하여 장장 반세기에 걸쳐 전개된 그의 삶은 체 게바라, 존 F 케네디, 니키타 흐루시초프 등과 함께 세계 무대를 풍미했다.
1953년 카스트로가 무장대원을 이끌고 감행한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습격하다가 실패한 후 구속된 법정 최후 진술에서 그는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라고 뇌까렸다. 카스트로는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한 이후 49년간 공산주의 이념으로 쿠바를 통치해 왔다. 미국의 CIA는 카스트로의 공산독재가 미국에 위협이 된다며 카스트로를 제거하려고 48년동안 무려 638건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카스트로는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은 수많은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은 것”이라고 뽐내기도 했다. 혁명에 성공할 때만 해도 카스트로는 민족주의자였으나 카스트로를 사회주의자로 만든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 하자 카스트로는 구 소련의 도움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사회주의자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권의 붕괴는 쿠바를 폐쇄국가로 몰고 갔다. 쿠바 경제는 몰락했고 미국은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을 강화했다. 이후 확고한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한 카스트로는 언론탄압과 지식인 감금, 정적의 숙청으로 쿠바를 ‘카스트로 제국’으로 둔갑시켰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자신의 우상화 작업을 거부하여 북한의 김일성 왕조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고 카스트로 정권에서 하향 평준화된 생활에도 쿠바 국민들은 별다른 불만이 없어 보인다.
쿠바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아바나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을 때 기가 막힌 대화가 오갔다. 카스트로가 “교황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모든 국가 원수들이 교황 앞에 세계평화 운운하며 겉치레 수사를 바쳤지만 카스트로는 단도직입적으로 교황의 존재 의의를 질문했던 것이다. 과연 혁명가 카스트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