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취의 은혜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한 이슬성신의 향취
발행일 발행호수 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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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최창환 집사가 최대규 관장(왼쪽)과 이동철 군에게 향취의 은혜를 간증하고 있다.

함께 이야기 나눈 사람

최창환집사(72.서대문교회)
최대규학생관장(30.서대문교회)
이동철군(21.서대문교회)

최대규관장: 선생님 향취의 체험을 했다는데 이야기 좀 해주세요. 최창환집사: 신앙동기부터 말해야겠네요. 1968년 봄이었어요. 당시 다섯 살된 아들이 있었는데 감기인 것 같아 병원에 갔더니 청천벽력으로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당시는 치료방법이 전혀 없어 곧 사형선고였어요. 이동철: 얼마나 슬프셨겠어요.

다섯살 인생이 애처로와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해

최창환집사: 그래서 위로를 받고 싶어 근처의 감리교회를 찾아 교회에 온 사연을 말하니 별 관심없이 오히려 부담스런 표정이었습니다.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어 아이의 병은 계속 진행 되어 나중에는 다리 힘이 빠져 걷지도 못하게 되고 더 진행되니 서지도 못하고 다리를 만지면 아파하고 괴로워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형언할 수가 없었죠. 다섯 살을 일생으로 끝내야 하는 어린 생명이 너무도 애처로웠습니다.

위로를 받으려고 기성교회 찾았더니
불은 꺼지고 문은 닫혀있어
문두드려 들어가니 부담스런 표정만

하루는 어린 것이 아파 너무 괴로워하여 밤새 부등켜 안고 울다가 새벽예배에나 가보고 싶어 집을 나섰습니다. 다니던 교회는 위로가 되지 못하여 가기 싫었고 근처의 큰 장로교회가 생각나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불은 꺼져 있고 문은 굳게 잠겨 큰 건물만 덩그렇게 흉물처럼 서 있었습니다. 그래 멍하게 밤 하늘의 별 빛만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송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소리나는 쪽을 살펴보니 불 켜진 조그마한 교회가 보여 그곳에 마음이 이끌려 찾아갔습니다.

전도관 전도사님이
`의학적으로는 해볼 대로 해봤으니
하나님께 한번 의지해 보시지요`하고
생명물 한 병을 담아서 건네주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보니 몇 명이 의자도 없이 바닥에 꿇어 앉아 예배드리는 모습이 경건해 보이더군요. 예배의식도 몰라 맨 뒤에 앉아 머리만 조아렸지요. 예배가 끝나니 모두들 내게로 와서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 물어 내 사연을 간단히 말하니 전도사님이 “잘 오셨습니다. 아드님을 위해 세상적으로는 해볼 대로 다 해보셨으니 하나님께 의지해 보시지요.”라고 하며 진지하게 신앙을 권면하는게 감리교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에 위로가 되었지요. 그리고 생명물 이야기를 하며 아들에게 먹이고 아픈 부위를 찜질해 주라고 권했습니다. 그 순간 ‘내가 지금 찾아 온 곳이 전도관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대학 다닐 때 전도관에 대한 비방이 너무도 심하여 아주 나쁜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가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도망하다시피 빠져나왔지요.

그런데 그 날 퇴근 후 집에 오니 낮에 전도관 사람들이 심방을 다녀 갔다는 거예요. 감리교회에는 두 달 가까이 다녀도 심방 한 번 없었는데 전도관은 새벽에 한 번 들린 것 뿐인데 심방을 왔다니 ‘신앙촌 사람들 극성맞다더니 그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음 날 새벽이 되니 어제 찾아간 전도관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갔죠. 모두 반갑게 맞아 주셨고, 생명물 한 병을 담아 주시며 아이에게 먹이고 찜질도 해주라는 것이어서 은근히 의지하고 싶어 나의 전도관 생활이 이렇게 시작이 되었어요. 그 곳이 금호동에 있는 개척된 지 얼마 안 된 ‘금북전도관’이었어요.

1주일이 지나자 열이 없어져
생명물에 대한 굳은 신뢰감 생겨

전도사님의 권고가 은혜 받아야 병이 낫는 것이니 어린 것을 데리고 새벽예배에 참여 하라는 것이에요. 문제는 11월인데 의사말로는 그 병에 감기가 제일 무서우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새벽 바람을 쏘인다는 것은 아주 무지한 처사지요. 그래 망설이다가, ‘감기 무섭다고 아랫목에 묻어만 놓으면 살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새벽예배에 나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전도사님은 매일 심방을 해 주셨고 심방예배를 드리고 나면 왠지 기쁘고 아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니 가장 해롭다는 열이 없어졌어요. 약은 모두 끊고 외관으로는 맑은 맹물로 보이는 그 생명물만 먹였는데 약으로도 안 되던 열이 없어지다니! 정말 놀라워 생명물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 열심히 매달려야겠다는 각오가 섰지요.

새벽예배에 가려면 옷을 두텁게 입혀야하니 그 때마다 다리를 스치면 아이는 자지러지게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열흘을 지나자 옷을 입히는데 울지를 않아요. 손으로 다리를 만져도 반응을 안해요.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니 괜찮다는 거예요. 신기하고 너무 고마웠습니다. 생명물의 효험이 이런데 안수를 받으면 더 효험이 있겠다는 갈망이 생겨 하나님께서 주일예배를 마치시고 차에 오르실 때 안수를 받았어요. 보통 때는 예배드리고 돌아와 아이를 마루에 내려 놓으면 털석 주저 앉는데 안수받은 그날은 내려 놓으니 주저 앉지 않고 우뚝 서더니 뚜벅 뚜벅 몇 발자국을 걸어가 방문을 잡는 게 아니겠어요? 참 신기한 능력이었습니다. 감격과 소망의 기쁨이 넘쳤습니다.

호사다마… 마귀의 유혹에 걸려
좋아지던 병세는 급전직하(急轉直下)
아이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으나
천사와 같이 아름답게 피어나

최대규관장: 그래서 다 나았나요?

최창환집사: 세상말에도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해 12월 축복일에 처음으로 덕소신앙촌에 가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는데 한 할머니가 우리 애를 물끄럼이 보더니 “쯧쯧 이 잘 생긴 애를 왜 이리 못 쓰게 만들었노. 고양이 하나만 먹이면 바로 낫는데… “하며 혀를 차는게 아니겠어요?

병을 바로 고칠 수 있다는 말에 미혹되어 동대문시장에 가니 즉시 하나를 잡아 주어 그것을 끓여 국물을 두어 숟가락 떠 넣었는데 이게 어쩐 일입니까! 아이가 “배아파” 하며 뒤트는데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너무도 다급하여 전도사님을 모셔 왔지요. 전도사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현성이가 병이 낫는 것은 은혜와 생명물로 몸을 맑혀서 낫는 것인데 선생님이 하신 일은 맑은 물에 먹물을 떨어뜨린 것과 같습니다” 하시며 손가락으로 토하게 하니 온 집에 노린내 악취가 가득 하였습니다.

그 날 이후 병세는 계속 내리막이 되었어요. 그래 회복 불능이라는 예감이 들어 마음의 준비라도 하기위해 의사에게 이 병의 최후 모습이 어떠냐고 물으니, 두 가지로 오는데 고열로 폐렴이 되어 끝이 나던가 또는 심한 각혈을 하여 마지막에 이른다는 거예요. 아이는 열도 없고 코피 한 번 나지 않았으나 자꾸 쇠잔하여 갔습니다. 새벽예배에 다녀와서 애를 내려 놓으니 이상하게 힘이 없어 보여 생명물을 먹였더니 고양이 사건 이후 한동안 그렇게 안 먹으려고 했었는데 주는 대로 맛있게 몇 컵을 받아 먹고는 스르르 조용히 숨을 거뒀어요.

사람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이슬성신과 잠시도 쉬지않고
솟아나는 진한 향취의 은혜

이동철: 얼마나 슬프셨습니까?

최창환집사: 소식을 듣고 전도사님, 교인분들이 오셔서 예배를 드리며 옷을 벗겨 생명물로 씻어 주는데 벌써 굳어서 가위로 옷을 잘라서 벗겨야 했어요. 저는 바로 사망신고를 하고 매장할 준비를 하여 돌아오니 그때까지 방에서는 찬송을 드리고 계셨어요.

방문을 여니 방안은 안개 같은 것으로 꽉 차서 사람들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향나무의 향긋한 향 같은 것이 온 방안에 짙게 둘려 있어 어리둥절하고 서 있으니 전도사님이 앉으라고 권하며 “현성이 살리려고 그렇게 애쓰셨는데 섭섭하시겠으나 구원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며 덮은 가운을 젖히는데 이게 웬일인가! 천사가 누워 잠자는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은 3,4세 된 건강한 어린아이가 뜨거운 아랫목에서 한잠 자고 난 것처럼 발그레한 맑은 두 볼, 보기 예쁘게 도톰해진 얼굴,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는 눈매, 붉은 루즈를 바른 듯한 입술… 금방이라도 일어나 안길 듯만 싶었습니다. 굳어서 가위로 잘라 옷을 벗겼던 팔은 살았을 때처럼 움직이며 짝짜꿍을 해 보여 주셨습니다.

내아이의 죽음에 하나님의 신이 친히 임하셔서 축복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어 슬픈 생각은 다 사라지고 감사의 눈물만 흐르더군요. 그런데 장로교인이던 이모가 와서 아이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니 금방 입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 나왔어요. 모두가 놀라는 중에 아이 이모는 무서워 방에서 빠져 나가더군요. 기성교회의 영이 마귀라고 하나님이 항상 말씀하심이 증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관을 싣고 영구차를 탔는데도 관에서 계속 향취가 나왔고 망우리산을 북풍 속에서 올라가는데도 관에서 계속 향취가 났으며 매장을 마치고 귀가 길에 버스를 탔는데도 향취가 연결이 되었어요. 집에 도착하여 마당에 들어 서니 향취가 확 바뀌는데 표현할 길 없는 꽃향기가 온 집에 가득하였어요. 향기는 점점 짙어져 수고한 교인 분들 대접한다고 주방에서는 음식을 만드는데 음식 냄새는 하나도 안 나고 향취만이 가득하여 옷에, 피부에 배어 있는 듯 물씬 물씬 향취가 맡아졌어요.
최대규관장: 이슬성신의 향취는 언제 들어도  신기하군요.

받은 은혜 감격함여 언제
어디서나 이슬성신을 증거

최창환집사: 향취에 젖으니 구원의 소망이 뚜렷해지고 이 귀한 생명의 길을 모르는 세상 사람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억제할 수 없이 솟아 올랐습니다. 그 날부터 위로한다고 집에 찾아온 친지나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감람나무와 향취를 증거했지요. 여기 젊은이들도 경험했겠지만 학교 수업시간에 공부하기 싫으면 “선생님, 이야기 해주세요”하고 선생님들을 조르잖아요. 저는 그럴 때 제가 은혜 받은 이야기며 체험한 향취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기성교회 다니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신앙촌 이야기 한다고 투서를 했었나봐요. 교장선생이 “최선생님 수업시간에 종교 얘기를 한다고 말이 많습니다.”라고 하는 데 그자리에서 그 교장선생을 붙잡고 또 전도를 했지요. 그랬더니 교장선생은 “예, 예 알았습니다. 애들이 말이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하더군요. 선생 중에 기성교인 한 분은 전도관 비방을 하고 다녀서 제가 조용히 불러 “전도관 사람 한 명이라도 만나보고 그러한 비방을 하느냐”고 묻자 잘못했다고 사과하여 “생명물 여기 있으니 한 번 마셔보라”고 한 일도 생각납니다.

이동철: 선생님 열매 중에 기억나시는 분은요?

최창환집사: 전도를 해서 교회에 데리고 왔던 학생들은 몇 클래스가 될 정도로 많았어요. 그 때 전도한 학생 중에 한정임관장(현재 서산교회 관장)이 기억 납니다.

이동철: 그러면 하나님의 향취의 은혜는 지금도 계속해서 내리고 있는 것이지요?

최창환집사: 그렇지요. 지금도 마음의 문을 여는 자에게 이슬성신의 은혜는 한없이 내린답니다.

■ 최창환 선생은
1935년생
196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1961~1997년 모범 교육자로 교편 생활
현재 서울 서대문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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