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자의 길

`지금 이슬성신이 연결돼 기뻐하고 있습니다.`
발행일 발행호수 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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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교역자는 젊은 관장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는 성공한 교역자가 되는거야…`

1957년 29세의 약관으로 강원도 오지 아야진 전도관에 발령을 받은 이후 1999년 71세의 나이로 정년퇴임 할 때까지 42년간 27개 교회에서 시무하며 하나님을 증거한 노(老) 관장이 작년에 교역에 뛰어든 젊은 관장과 마주앉아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윤종철:오늘 후배 젊은 관장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손을 붙잡고 은혜 받은 이야기부터 해주시지요.

박정삼:1957년 제가 주일학교 반사 시절인데 하나님께서 성동제단에 오셨을 때였어요. 제가 준비찬송을 하게 돼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찬송인도를 하고 있길래 ‘나는 하나님 오시는데 안내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큰길가에 나가서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프차에서 내리시는 것을 보고 인사를 드린 후 무조건 하나님 손을 부여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언덕배기를 올라가던 저는 하나님의 손에서 제 손으로 은혜가 철철 흘러 들어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도 좋았던 저는 예배가 필한 후에 또 다시 하나님의 손을 잡고 큰길까지 걸어가는데 하나님께서 “나와 기성교회 목사들과는 다른데 저 야단들이지.”라고 하시고 하늘의 큰 별을 가리키시면서 “저게 감람나무 별이야.”라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철이 없었던 그때의 일이 송구할 뿐입니다.

윤종철:그리고 하나님의 옥고(獄苦)중에 방청을 제일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박정삼:제가 교역자를 하면서 하나님의 재판에 17번이나 방청을 했는데 제일 울화통이 치민 것은 목사들이 판사에게 몰려와 올바른 재판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판사가 하나님께 축복 사진의 진위(眞僞)에 대해 질문하니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서라도 내가 예배를 인도하고 우리 교인이 셋, 기성교인이 셋, 기자들이 셋씩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보면 틀림없이 축복이 찍힐 것이니 그렇게 하면 진위가 가려 질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시자 판사가 옳게 여겨 그렇게 하려고 휴정을 선언하고 목사들과 의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들이 ‘그렇게 하면 큰일 납니다.’고 일제히 반대하여 마침내 판사가 하나님의 신청을 기각하고 말았습니다.

윤종철:오랜 교역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들을 말씀해 주세요.

박정삼:제가 1958년 전라도 옥과로 발령을 받았는데 주동 집사님 댁의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제단을 시작하였지요. 아이들을 몇 명 모아가지고 “가자 어디로, 전도관으로…”라고 찬송을 크게 부르며 동네를 한바퀴 돌면 30명 정도가 모이는 거예요. 그 애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나중에는 아이들 부모들이 하나 둘 모여 구경꾼으로 따라 왔습니다. 그 때 감람나무를 증거하면 모두들 믿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집사님이 자기네 땅에 교회를 짓고 상량식을 하게 되었는데 마차(馬車, 그때만 하여도 택시가 없어 마차를 타고 다녔음) 조합장을 하는 둘째 아들이 “어머니, 지금 박장로가 감옥에 가 있는데 무슨 짓입니까? 당장 치우세요.”라고 하면서 난리를 피우는 거예요.
아들이 무서워 피해 가다가 집사님이 개울물에 빠졌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는데도 강한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아들이 “어머니 제가 잘못 했습니다.”라고 물러나자, 이번엔 담양 전매소장인 큰 아들이 쫓아와서 교회를 못 짓게 방해를 하는 겁니다.  저는 “하나님! 꼭 이 난관을 이겨 전도관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라며 기도를 했지요. 이때 집사님 댁의 다섯 아들 중에 중학교 3학년짜리 막내아들이 나타나 “이렇게 좋은 일 할 기회가 우리 가족에게 주어졌는데 놓치면 안됩니다. 이 땅은 나중에 나에게 줄 유산으로 생각하고 나는 유산 청구를 안하겠으니 그것으로 전도관을 지으세요.”라고 어른같이 말하니 사람들이 막내아들을 칭찬하게 되고 큰형도 물러나 전도관을 계속 지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시골 전도관에서 시무할 때의 일입니다. 마침 마을의 유지가 병이 깊어 아파서 누워있었습니다. 전도관에 가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서는 찾아와 “내 병을 고쳐줄 수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아무 공로가 없으면 안되니 하나님 앞에 공로를 세우시오.”라고 했더니 자기가 나으면 제단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축복받은 시온캐러멜 2알을 주었습니다. 그 유지가 그것을 끓여 먹고 병이 나은 거예요. 그 분이 병이 나은 후 전도관을 지으니, 캐러멜 2알로 교회가 세워지는 권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1959년 광주 대천에 있을 때 들은 것인데 조기화(현 소사교회)씨가 병이 들어 3년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병상에 누워있었지요.
논 세마지기를 팔아 약값을 대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가 하나님께서 화순에 오셨을 때 안수를 받고 병이 나았습니다. 밥 한 숟가락 못 먹던 사람이 낫게 되어 논, 밭일을 하게 되자 동네 구경꾼들이 몰려드니 조씨가 “박장로님이 그냥 내 머리를 한번 짚어준 것 뿐이야.”라고 하니 모두 신기해 했습니다. 마침 동네 이장이 문둥병에 걸려 아무도 접근을 못하게 새끼줄을 쳐 놓고 살았는데, 조기화씨의 소문을 듣고 밤에 몰래 전도관 전도사를 찾아가 무조건 살려달라고 애원했답니다. 전도사가 환자를 데리고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러 가니 고름이 나오는 문둥병 환자를 보고 전도사님들도 모두 도망을 가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름투성이 문둥병 환자를 안찰해 주셔서 낫게 되고 이 일로 그 전도관이 크게 부흥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윤종철:관장님이 단에 서서 받은 은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박정삼:제가 마산에 있을 때였습니다. 기장 신앙촌에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돌아가 단에 서서 며칠 후에 찬송을 부르는데 이슬성신의 은혜가 연결되며 뽀얗게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예배를 필한 후에 혼자서 기뻐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하나님이셨습니다.
“저, 박 전도삽니다.”“응, 지금 뭐하고 있나?”“네, 지금 이슬성신이 연결되어 기뻐하고 있습니다.”“그래, 그것이면 다 되는 것이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만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제가 단에 서는 전도사였기에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었습니다.

윤종철:끝으로 후배 교역자들에게 해 주시고 싶은 말씀은요?

박정삼:1957년부터 1999년 은퇴할 때까지 42년간 교역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실 때 만사가 형통하고 교인들도 좋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교역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해도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교역자 한사람은 너무도 말주변이 없어 설교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단에서 “박태선 장로님은 감람나무입니다.”라는 말밖에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니 교인들은 모두 좋아했으며 교회도 부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로 나온 관장님들은 하나님께 매달려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큰 성공이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윤종철:감사합니다.

/정리 김종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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