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으로 죄를 소멸시키실 때 내 속의 죄가 대항해 그처럼 아파

김필녀 승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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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오른쪽 사진은 예미전도관 개관집회날. 원내가 김필녀 승사이다.

새벽예배가 끝난 후에는 신앙촌에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들은 본인이 은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어떤 분은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쾅!’ 하고 치시자 거기서 불덩어리가 튀어나와 자기 가슴으로 날아왔으며 그 순간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뜨거움을 느낀 후로 속병이 깨끗하게 나아서 소화도 잘되고 속이 아주 편안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불덩어리가 바로 ‘불성신’이라고 했는데 그때 저는 감리교회의 교인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교인은 단상에 전기 장치를 해 놓아서 불이 번쩍거리는 것이라고 했지만, 불이 날아와서 직접 뜨거움을 느끼고 더구나 속병까지 낫는 것은 전기 장치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촌 사람들 말대로 정말 은혜가 내리나 보다.’ 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나흘 동안 신앙촌에 더 머물렀는데 오만제단에서 예배드리며 예배실 가득히 진동하는 향기를 자주 맡게 되었습니다. 한참 예배를 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싱그럽고 좋은 향기가 아주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실에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는 데다 창문이 멀리 있어서 그런 바람이 저한테까지 불어올 리가 없는데도 분명히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향기가 계속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새로운 향기가 맡아지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감리교회 교인은 향수를 몰래 뿌려 놓아서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아무리 향수를 뿌린다 해도 그처럼 새로운 향기가 계속 바뀌면서 맡아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향기를 계속 체험하면서 저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에 며칠 더 머물면서
오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싱그럽고 좋은 향기가 순간순간
새로운 향기로 바뀌면서 맡아져

기성교회서는 향수를 몰래 뿌려놓아
향기가 난다고 음해했지만
새로운 향기가 바뀌면서 맡아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깨달아

신앙촌에서 머물던 중에 김원일 권사님이 입관예배에 참석해 보자고 하여 어느 집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갔을 때는 이미 입관예배가 끝난 뒤여서 관을 모셔 둔 방에 잠시 들어가 보았는데, 관 가까이에 다가서자 놀랍게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치마를 입고 있었던 저는 관 주변에 시원한 바람이 감돌아 종아리에까지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바람과 함께 백합 향기같이 좋은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관 주변에 어떻게 바람이 감돌지?’ 하며 무척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김 권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성신의 바람이에요. 성신으로 지켜 주시는 거예요.”라고 하여 그 신기한 바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앙촌 사람들에게 안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찰을 받으면 성신으로 죄가 씻어진다고 하니 꼭 받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박 장로님께서 신앙촌 주민들에게 안찰을 해 주신다고 하여 저도 안찰 받는 장소에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가운데 군복 차림의 청년이 반듯하게 누워 안찰을 받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께서 양손을 청년의 배 위에 살짝 얹어 놓으시자 순식간에 배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 등이 활처럼 굽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손을 살짝 대시기만 할 뿐인데도 그 청년은 발버둥을 치며 몹시 괴로워해서 옆에 있던 사람들이 얼른 팔다리를 붙잡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저는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며 걱정이 되었습니다. 곧이어 제가 안찰을 받을 차례가 되어 박 장로님께서 두 눈에 손을 대시자마자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배를 안찰하실 때는 배 위에 손을 가볍게 얹으시고 살짝살짝 움직이셨는데 그때마다 배 속의 장기가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며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아픔이 차츰차츰 덜해질 때 박 장로님께서 손을 떼시며 “이제 됐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안찰을 받고 나오면서 ‘살짝 손을 대시기만 할 뿐인데 왜 그리도 아팠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성신으로 죄를 소멸하실 때 내 속의 죄가 대항하여 그처럼 아픔을 느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에서 머물면서
직접 은혜를 체험하였고
또 사람들의 진실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
‘믿으려면 이렇게 믿어야겠다.
여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저는 일주일가량 신앙촌에 머물며 직접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고, 신앙촌 사람들의 진실한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아 ‘믿으려면 이렇게 믿어야겠구나. 여기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당장에라도 신앙촌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저는 ‘언젠가는 신앙촌에 들어올 수 있겠지.’ 하며 아쉬운 마음을 접고 강원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감리교회에 나가지 않고 저희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촌의 권사님 한 분이 저희 집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으며, 얼마 후에는 정식으로 전도사님이 발령받아 오셔서 전도관 건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10년이 넘게 감리교회에 열심히 다녔으며 다 쓰러져 가는 감리교회를 새로 세우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 사정을 아는 동네 사람들은 달라진 저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전에 다녔던 감리교회의 전도사와 교인들이 쌀쌀맞게 대했으나 그런 이목은 저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진실하게 믿는 길을 알았으니 꼭 그 길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1963년 6월 10일 아담한 예미전도관이 완공되어 개관예배를 드리던 날은 강원도 각지에서 전도사님들과 교인들이 오셔서 잔칫날같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단상 쪽에서 광채가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라웠는데, 저뿐 아니라 예배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봤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미전도관에 열심히 다니며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라 하실 때 저는 제가 직접 맡았던 향기를 떠올리게 되었고, 박태선 장로님께서 바로 그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제단에 나가 새로운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필녀 승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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