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과연 믿음의 조상이라 할 수 있나?

협회편집실
발행일 발행호수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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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탈리아의 화가 게르치노(1591-1666)가 그린 . 아브라함 뒤의 등돌린 여인은 사라인 듯.

이번 호부터는 성경상에서 추앙받는 인물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맨 먼저 살펴볼 인물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BC 2000년경에 활동한 히브리 족장들 가운데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으로 노아 이후로 10대째 되는 사람이며,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지금의 이라크 남부)에서 태어났다. (창세기 11:10~28)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그가 99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라는 이름을 주셨다고 한다. (창세기 17:5)

아브라함은 고향과 동족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가서 새 민족의 설립자가 되라는 창세기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75세에 아내 사라, 조카 롯, 그 외의 일행들과 함께 가나안(지금의 팔레스타인 지방) 땅으로 간다. (창세기 12:1~6)

창세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거듭해서 받는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나중에 소돔에 정착하게 되는데,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 가족과 함께 탈출하는 바로 그 인물이다. 롯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알아볼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고 칭한 구절은 신구약에 여러 군데 나오며(창세기 15:6, 로마서 4:1~12 등), 믿음의 조상으로 높여지는 구절도 여럿 된다. (로마서 4:11~25, 갈라디아서 3:7, 29 등)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의인이기는커녕 구원을 알지도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며 그 이유를 지적해 주셨다.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포장한 糖衣(당의)를 벗기고 그의 실체를 한번 보자.

창세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땅의 티끌같이 번창할 것이라고 했는데(창세기 13:16, 15:5), 아마도 아브라함은 그 말을 믿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가지지 못하자, 후손을 보겠다는 이유로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6:2~3)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다고 칭하고
믿음의 조상으로 추존했지만

하갈을 첩으로 삼고 매일 죄를 지었으니
그는 의인은 커녕 구원을 알지도 못하는 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갈과 눈이 마주쳐 좀 이상한 태도만 가졌더라도 의인이라고 할 수 없는데, 그보다 더하여 하갈을 첩으로 삼고 매일 죄를 지었으니 그는 의인이 아니요, 구원을 알지도 못하고 구원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럼, 첩을 들인 아브라함의 집안을 한번 들여다보자. 아브라함의 첩이 된 하갈은 집안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데, 이 때문에 사라와 부딪치게 되고, 집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왔다가 하면서 분쟁거리가 된다. (창세기 16:4~16)

이 분쟁은 아브라함 대에서만 끝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나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 또 사라는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던 해에 이삭을 낳는데, 이스마엘의 혈통은 지금의 아랍 및 이슬람 민족을 형성하게 되고, 이삭의 혈통은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형성에 기반과 근거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으로 세 종교로부터 모두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으나, 그의 자손들의 갈등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에서, 중동에서, 나아가서 전 세계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 세 종교의 성지라는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가 무색하게도 전쟁과 갈등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테러와 보복 공격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분쟁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볼 때,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나 실상은 범인(凡人)보다 못한 아브라함의 죄악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들 이삭을 창세기의 하나님에게 번제로 드릴 뻔한 이야기가 그의 믿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그를 의인화(義人化)해서 쓴 것이며, 어떤 귀한 걸 다 했다 해도 구원을 어떻게 얻는지 방법도 모르는 아브라함에게는 구원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첩을 두고 산 아브라함.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범죄해서는 안 된다는 자유율법을 생각할 때 아브라함에게는 의인은커녕, 믿음이라는 말조차 붙이기 어려워 보인다.
/협회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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