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복음에 나타난 오류 –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르게 서술해

주옥희 / 협회편집실
발행일 발행호수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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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은 신약 성경 처음에 나오는 네 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의 생애에 대해 마태·마가·누가·요한, 네 사람이 각각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복음(gospel)’이라는 말은 ‘좋은 이야기’를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god-spell’에서 유래한 것이다.

요한복음을 뺀 세 복음서는 병행된 본문들이 많고, 예수의 삶과 죽음을 비슷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라고도 부른다.

저작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학자들은 4복음이 모두 70~100년 전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수가 정말 33세경에 십자가에서 죽었다면 이 복음서들은 예수 사후 40년 후쯤에 쓰여진 것이고, 일설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도망가서 80여 세까지 살았다면 말년 또는 사후 얼마 뒤에 쓰여진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4복음의 저작 시기나 원본의 존재 유무는 둘째 문제다.

가장 큰 오류는 4복음이 똑같은 사실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오류까지 논하기에는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대강 몇 가지만 짚어 보기로 하자.우선 살펴볼 것은 예수의 혈통에 관해서다.

마태복음(1:1~16)과 누가복음(3:23~38)에 보면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계보는 같지만, 다윗부터 예수까지의 계보는 두 복음서가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상의 이름만 다른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에는 예수가 다윗의 27대손으로 기록돼 있고 누가복음에는 42대손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물론 이 ‘후손’이라는 것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리아가 정말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면 예수는 요셉의 혈통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구누구의 혈통이라는 말조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2장)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 살았는데, 인구 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에 가야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예수가 베들레헴의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2장)에 따르면 그 가족이 분명히 베들레헴에 살았고, 예수는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6월 26일, 미국 ABC방송에서 피터 제닝스가 진행한 스페셜 방송 ‘The search of Jesus’(예수를 찾아서)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수가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은근히 비친 바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를 묘사한 부분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마태복음(27:44)과 마가복음(15:32)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가 모두 예수를 모욕한 것으로 나오지만, 누가복음(23:42~43)에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회개해 구원받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무덤 장면은 더욱 심각하게 뒤죽박죽되어 있다.

마태복음(28:1~2)에는, 두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에 갔는데, 이때 지진이 일어나면서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을 치우고 그 위에 앉는다.

마가복음(16:1~8)에는, 두 마리아와 살로메가 무덤에 갔고, 큰 돌을 어떻게 굴릴까 걱정하는 사이 돌이 치워지고, 그 안에 들어갔더니 흰 옷을 입은 한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또 누가복음(24:1~12)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또 다른 여인들이 갔다고 하며, 큰 돌이 이미 굴려져 있고, 그 안에 들어가니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요한복음(20:1~18)에는 막달라 마리아 혼자서 갔는데, 큰 돌이 굴려진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달려가 알리고, 제자들이 와서 동굴 안을 보고 베만 남은 것을 확인한다. 곧 마리아는 동굴 안에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있는 것을 보는데, 이때는 아예 예수가 나타나 말을 한다.

또, 모두 열거하기는 어려우나, 부활했다는 예수가 나타나 승천하기까지의 기록 또한 4복음서 모두 다르게 적고 있다.

단순한 시각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기록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후손들이 필요에 따라, 구미에 맞게 골라 쓰게 하기 위해 다양한 메뉴를 갖춰 놓은 것일까.

요한복음 21장 25절에 보면 『예수의 다른 행적이 또 많으니 다 낱낱이 기록하려 하면 내가 생각건대 기록한 책을 둘 곳이 이 세상이라도 부족하리라.』 하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을 허풍이라고 지적하시며,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예수 설교를 길게 늘이기 위해 넷으로 갈라서 4복음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렇다.

예수가 30세까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고, 길어야 3년간의 기록이 있을 뿐인데, 비슷한 내용을 네 사람이 각각 써서 네 배로 불렸고, 그것조차 꾸며 쓰느라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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