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협치의 정치문화를 정착시켜야
코로나19가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가운데 한국도 피할 수 없는 비상시국을 맞아 21대 국회가 어렵사리 문을 열었지만 연일 실망스러운 모습뿐이다. 176석의 숫자를 앞세운 ‘슈퍼 여당’의 일방 독주는 도를 넘었고, 이에 맞서는 야당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와 국회가 항상 국민 앞에 내놓는 공통의 화두가 협치인데 정치적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21대 국회 개원연설에서도 ‘협치’ 문제에 대해 자신과 국회와의 공동 책임을 강조하고 “20대 국회의 가장 큰 실패는 ‘협치의 실패’로, 우리 모두의 공동책임이다”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는 대결과 적대의 정치를 청산하고 반드시 ‘협치의 시대’를 열어가자”고 주창하며 협치로 시작해 협치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협치에 대한 국민의 큰 기대는 채 한 달도 못 갔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의 키워드 역시 협치였다. 이구동성으로 협치를 말하지만 문 대통령이 말하는 협치와 주 대표가 말하는 협치의 의미는 무늬만 같지 상당히 다르다. 정부·여당의 협치는 야당의 협조에, 야당의 협치는 정부·여당의 양보에 방점이 있다.
“대통령이 말하는 협치는 대통령과 민주당이 하는 일에 반대하지 않고 그냥 찬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냐”는 주 대표의 국회 연설에서 보듯이 여야의 협치는 동상이몽인 격이다.
현재 민주당과 통합당은 검경개혁, 부동산정책, 행정수도이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맞부딪치며 법안 상정 관례와 절차를 무시한 채 거대 여당이 힘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통합당은 “의회민주주의가 철저히 짓밟혔다… 의회 독재”라고 반발하며 표결불참 선언 및 상임위 보이콧을 포함한 대여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런 의회민주주의의 일방적인 운영을 규탄만하고 있을 뿐 속수무책이다. 박대출 통합당 의원은 “이게 지금 문재인식 협치입니까. 176석이 무슨 독재면허증인줄아십니까. 김여정한테는 쩔쩔매면서 어떻게 이렇게 야당한테는 당당하십니까”라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동물국회 식물국회가 따로 없다.
추미애 법무부장관 또한 최근 국회 법사위에서 야당 의원 질의와 관련해 “소설 쓰시네”라고 국회를 경시하는 듯이 한 말은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국무위원으로서 할 말은 아니다. 슈퍼 여당의 힘을 믿고 국회를 가벼이 보는 오만과 자만심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협치는 고사하고 야당을 무시하고 정쟁과 파행으로 얼룩진 ‘실망 국회’는 국민들의 불안감과 정치혐오감을 증폭시켜 정치 아노미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지금과 같은 구도라면 21대 국회 내내 여당의 독주와 야당의 보이콧, 이로 인한 정쟁이 예상되는데 이는 국회의 암담한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여당은 일방적 독주를 이쯤에서 멈추고 야당을 파트너로서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함께 가야 한다.
야당의 합리적인 문제 제기 역시 국민의 목소리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이므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해선 안 된다. 국회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새로운 협치 정치문화를 창출해야 최선의 의정이 가능함은 물론, 국회의 존립 자체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