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치실 때마다 불덩어리가 튀어나와

김귀임 집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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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다음 날 저는 새벽 일찍 일어나 주인집 아주머니와 함께 전도관에 갔습니다. 아직 캄캄한 새벽이었지만 천호동전도관에는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한마디 한마디 어찌나 간절하게 부르는지 장로교회에서 느릿느릿 찬송하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은 전도사님이 주시는 물을 한 컵씩 마셨는데, 전도사님은 저에게도 한 컵을 따라 주시며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귀한 생명물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귀하다는 말씀에 조심스럽게 생명물을 받아 드는데 순간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축복을 하셨다더니 뭔가 다르긴 다른가 보다.’ 생각하며 생명물을 마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생명물에서 향기가 나더라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벌써 은혜 받았네.” 하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그 향기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향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아주머니가 기뻐하시니 좋은 일인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날 전도관에 갈 때는 ‘내가 잘하는 건가?’ 하며 망설였는데, 예배를 드리고 나니 은혜가 내리는 곳에 계속 다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새벽예배에 나가 생명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새벽예배가 끝난 후 생명물을 한 컵을 주셔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귀한 물이라는
말씀에 조심스럽게 생명물을 받았는데
순간 아주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가

그 주 일요일에는 처음으로 마포에 있는 이만제단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청암동 산언덕에 우뚝 세워진 이만제단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설교 말씀을 하시며 강대상을 “탕! 탕!” 하고 힘차게 내려치시는 순간, 거기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확확 튀어나왔습니다. 깜짝 놀라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니 강대상을 치실 때마다 분명히 불덩어리가 튀어나와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불이 나온다더니 진짜구나!’ 하며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날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내 영혼이 은혜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는 찬송을 부를 때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당시 저희 식구들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 품을 떠나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딸을 생각하면 저는 가슴이 못 견디게 쓰리고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쓰고 발버둥 쳐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으니 이런 세상을 더 살아서 무엇 할까 싶었습니다. 낮에는 먹고살기 위해 바쁘게 일하다가도 밤이 되면 ‘하나님 저 좀 데려가 주세요.’ 하며 한숨을 짓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찬송가 가사대로 슬픔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며 어느새 눈물이 흘렀습니다. 원래 저는 눈물이 없는 편인데 그날은 어쩐 일인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슬픔 많은 세상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보면 천국으로 화한다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드릴 때 어느 순간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며 좋은 향기가 머리 위에서 쏟아 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그때부터 눈물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흘러 그날 입고 간 치마 한 폭을 흥건히 적셨습니다.

전도관에 계속 다니며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웃는 날이 많아져
예배드릴 때마다 왜 그리도 기쁘고 즐거운지 연신 함박웃음을 짓게 돼
제단에 다닐수록 ‘이 길이 내가 살 길이고 내가 갈 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며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 하나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하는 찬송을 계속 불렀습니다. 찬송가처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그 어디나 천국이니 나와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렇게 전도관에 계속 다니며 저는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웃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제단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왜 그리도 기쁘고 즐거운지 연신 함박웃음을 짓게 되었고, 어려운 형편에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꼭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단에 다니면 다닐수록 ‘이 길이 좋은 길이고 내가 살길이고 내가 갈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전도할 사람들 방문해
심방예배 드리면서 교인들이 직접 은혜
받은 체험담을 이야기하면 큰 관심 보여
심방 할수록 제단에 나오는 사람 늘어

그 후 1964년 가을 무렵 천호동전도관에 부임해 오신 김영환 전도사님은 본인의 체험담을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전도사님은 원래 수십 년 장로교회에 열심히 다닌 장로로서 자신은 만세 전에 천당에 가기로 예정된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지난 죄를 가슴 깊이 뉘우치며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전도사님은 의심이 많아 쉽게 깨지지 않는 성격 때문에 별명이 ‘차돌 장로’였지만, 박태선 장로님께서 성신을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체험한 후로는 모든 의심을 버리고 이 길을 따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전도사님과 교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심방을 다니며 전도할 사람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집집마다 심방예배를 드리러 다니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심방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를 때면 아주 좋은 향기가 맡아져서 저는 ‘이 시간에도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은혜를 받은 체험담을 이야기하면 전도관에 나오지 않던 분들도 큰 관심을 보였으며, 한 집 한 집 심방을 하면 할수록 천호동제단에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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