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을 한 간첩과 빨치산?

발행일 발행호수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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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疑問死) 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이 “남파간첩 2명과 빨치산 1명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의문사위는 미전향 남파 공작원들이 사상의 자유를 위해 공권력에 저항하여 전향을 거부한 것은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침투한 간첩과 빨치산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의문사위의 결정은 많은 국민을 경악케 하였다.
 
의문사위는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등의 규정에 의해 활동하는데, 이 법들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분이나 유족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명예를 되찾게 하려는 입법취지로 제정된 것이다.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1조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하였고 동법 제2조 1호는 ‘의문사라 함은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으로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죽음을 말한다’고 하였는데 의문사위는 간첩과 빨치산까지 여기에 등장시켜 ‘민주화 운동’의 개념에 먹칠을 하고 진정한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의 명예를 욕되게 하고 말았다.
 
의문사위 위원들이 체제와 이념을 떠나 간첩과 빨치산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까지 그토록 철저하게 보장하고, 법에도 없는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문제까지 들먹인다면 그들은 마땅히 2천만 북한 동포의 인권과 수많은 납북자, 탈북자, 국군 포로, 이산 가족의 아픔을 온 세계에 고발하는 데 앞장서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상당수가 한을 품은 채 죽었을 6·25전쟁 당시 납북된 8만 5천여 명의 민간인들, 휴전 이후 납북된 어부와 KAL기 승무원 유학생 등 3800여 명, 국군 포로 4만여 명, 그리고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백만 이산가족의 아픔과 귀향에 대하여 그들은 왜 침묵하는가? 양심의 자유와 인권의 잣대를 한쪽에만 들이대는 그들의 주장이 위선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우리는 근자에 우리사회에서 전개되는 가치관의 전도에 놀라다 못해 무감각해 진 상태이지만, 의문사위의 ‘간첩과 빨치산 민주화 운동’결정파문은 대한민국 체제자체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더욱 개탄스럽다.
 
6·25 전쟁에서 우리는 간첩과 빨치산을 보낸 공산주의자들과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웠다. 그리고 그렇게 싸워 지킨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아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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