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신앙촌(14)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⑪

신앙촌의 15년은 사회의 1세기
발행일 발행호수 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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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아! 덕소신앙촌` 지금은 재개발되어 더이상 볼 수 없는 덕소신앙촌의 아름다운 모습은 원로 서양화가 전혁림화백의 캔버스 위에 채색되어 있다.

1970년 주간조선 박광리 기자의 보도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1억 원짜리 자가 발전기 4대를 갖춘 시온철강, 한일물산, 시온합섬의 산하엔 30여 개의 공장이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은 무려 80여종. 술과 무기만 빼놓고는 거의 모두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들 시온(Zion) 상표가 붙은 신앙촌 제품은 품질 좋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신앙촌 제품이 1백만 신도를 제외한 일반 가정으로 파고들어 갈 때 그들은 이미 ‘반은 전도가 된 것’으로 간주한다.

소비조합 파워

이렇게 만들어진 시온 상품은 전국 2천 여 전도관에 속해있는 직매점과 소비조합을 통해 소비된다. 특히 간장과 형광등, 캐시밀론 이불 등은 일반 가정 주부들에게 인기가 있어 단골집에 직접 배달해주는 ‘신앙촌 아줌마’가 오기를 기다릴 정도-

이들 생산품은 시내와 덕소를 연결, 아침 7시부터 시간마다 운행되는 10여 대의 대형버스와 수십 대의 트럭에 의해 운반된다.  특히 판매가 활발해지자 동대문 시장에는 시온상품 도매센터도 마련됐다. 어림으로 계산한다면 1백만 신도, 친척, 친지를 평균 3명으로 잡아도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약 3백만 정도의 소비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박 장로의 일과는 매일 새벽 5시에 열리는 새벽기도회에서 설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에는 경향각지의 전도관을 두루 순회하면서 예배를 인도했지만 최근엔 경남 동래군 기장면 수출 공업단지에 건설 중인 제3 신앙촌 일 때문에 동래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는 평일엔 매일 KAL의 첫 비행기로 동래에 내려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마지막 비행기로 덕소에 돌아온다. 주일(일요일)이면 신앙촌 안에 있는 제단(건평 1천 평의 2층 건물로 최고 1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는 전도관을 말함)에서 새벽기도를 인도하고는 바로 소사의 제1 신앙촌에 내려가 설교를 한다. 계속해서 그는 시내 각 구 마다 하나씩 있는 6개소의 중앙 전도관(이 밑에 다시 1백여 개 소의 작은 전도관이 있다)을 차례로 돌면서 설교한 다음 다시 덕소에 돌아와 또 한번 설교를 한다. 이렇게 해서 주일이면 모두 9차례의 설교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의 한 시간 설교는 다른 목사의 10시간 설교와 맞먹는다고 들 얘기하고 있다.

하루 아홉 차례의 설교

기자가 서소문의 제7중앙 전도관에 들렀을 때도 신도들은 전도사의 인도에 따라 박수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박 장로의 골드빛 승용차가 수행차량과 함께 도착했다. 박 장로는 각 전도관과 신도들이 갖다 놓은 생수 통에 축복을 한 후 제단에 섰다. 1시간 30분 동안의 그의 열띤 설교가 계속 되었다.

신앙촌의 주장은 우선 내 자신이 완전히 죄를 씻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 교회처럼 세속화되어서는 안 되고 신앙촌에서 착실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항간에선 흔히 신앙촌에 대해 ‘기업을 위한 종교’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전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을 강조한다. 미국에서 주는 구제품을 팔아먹기나 하는 일부교회나 너무나 세속화해서 타락한 일부 기성교회에 비하면 자체 자금으로 오늘날 이만큼 성장한 신앙촌이 오히려 떳떳할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신도가 아니더라도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없지 않다. 어쩌면 기성교회 못지않게 신앙촌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측은 악덕상인과 매판 기업가들인지도 모른다.

자립 자족의 신앙촌 기업활동에
비신자라도 박수 보내는 사람 많아

신앙촌에서 본 요즘의 바깥 사회는 국민소득에 맞지 않는 허영과 사치로 날이 갈수록 죄악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점점 세속화 되어 형식과 전통에만 얽매이고 부패될 대로 부패되어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다’고 기성교회를 진단한다.

‘신앙의 차원이 월등히 달라 기성교회와는 마찰이 있을 수도 없다’고 한 간부는 말한다. 요즘도 박 장로는 전보다 더 많은 이적을 행한다면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실존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계속 신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신도의 증가현상을 풀이한다.

신앙촌은 금년 내로 한 사람 앞에 한 명씩의 신도 배가 운동을 펼 계획이다. 또 그 결실을 가지고 멀지 않아 ‘아시아와 전 세계에 복음화 운동을 전개한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원대한 전도계획

그것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두고 보아야 알겠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동래군 기장면에 자리 잡은 약 1백만 평의 제3 신앙촌에는 이미 1만 평짜리의 단일 건물이 거의 완성단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계획된 공장이 모두 완성되면 총 건평 14만 평짜리 동양최대의 수출 공장이 들어서게 된다. 덕소 제2 신앙촌 건설 당초의 규모가 3만 평에 불과했던 점으로 보아 제3 신앙촌이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지고 또 언제 모두 끝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박 장로는 남산에서 첫 부흥회를 가진지 15년이 지난 오늘 조그만 두개의 소도시를 이룩해 놓았다. 그들이 스스로 말하듯 ‘신앙촌의 15년은 일반 사회의 1세기’에 해당될는지 도 모른다. 이제 기장수출단지 제3 신앙촌이 완성되면 수출품을 따라 신앙촌의 세력이 해외에까지 뻗어나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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