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신앙촌(12)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⑨

신앙촌 자체 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의 전기로
발행일 발행호수 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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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60년대 덕소신앙촌의 시온 제강 공장과 전기로에서 생상한 강괴의 모습.

1970년 9월 27일자 주간지 ‘주간조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옥고에서 자유의 몸이 된 박 장로는 곧이어 보다 근대적인 규모와 문화 시설을 갖춘 새로운 신앙촌 건설에 착수했다. 경기도 양주군 덕소리에 50만 평의 땅을 매입, 제2의 신앙촌 건설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실로 그가 출감한지 한 달 뒤의 일이다.

특히 제철공업은 그가 평생에 이뤄보려는 사업 중의 하나였다. 그 후 박 장로는 소사에서 옮겨온 신도들과 더불어 제2의 신앙촌 건설에 주력, 주택을 비롯한 방대한 규모의 각종 시설을 불과 3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지난 주 기자가 방문한 곳도 바로 이 제2신앙촌. 서울에서 중앙선 철도를 따라 16㎞. 때 아닌 호우로 불어난 북한강의 탁류가 신앙촌의 야트막한 동산을 무섭게 할퀴고 있었다. 자동차 길이 닦인 그 언덕에서는 경공업, 중공업의 공장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 가물거리는 각종 공장들은 서로 포개어져 헤아릴 수가 없다.

주택지에는 40평짜리 2층 양옥이 1백여 동 들어서 있다. 박 장로의 집도 그 중 하나인데 일반 신도들이 사는 다른 집들과 다른 점이 없다. 이 밖에 소형아파트가 15동, 1백 20가구가 들어 사는 대형 아파트가 5동,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소비조합, 보건소, 자가발전소 등의 각종 건물이 즐비하다.

또한 공장지대에서는 장유, 섬유, 제과, 전기, 슬레이트, 제강, 제철 등 30여 개의 공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완전히 하나의 공업단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공장 종업원들을 수용하는 대형 아파트 2동과 여자 종업원 기숙사, 전도관 등이 있어 그야말로 벌거벗고 입주해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아무나 원한다고 이곳 제2신앙촌에 모두 입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입주한 신도들은 소사의 제1신앙촌에서 옮겨온 가장 모범적인 신도들인 것이다. 이곳에 입주하려면 우선 지방 전도관에 1년 이상 다닌 독실한 신자로서 지방 전도관 전도사의 추천을 받아 소사의 제1신앙촌에 들어가 생활해야 하며 그곳에서 다시 추천을 받아야 이곳에 오게 되는 것이다.

자격만 있다고 누구나 입주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곳 덕소는 A형에서부터 H형의 아파트 등 10여개 종 3백여 동으로 되어 있는 소사에 비해 이곳은 그 규모와 시설을 달리하고 있어 값이 비싼 때문이다. 입주금을 참고로 밝히면 12만원짜리 아파트로부터 5백만 원~1천만 원짜리의 고급 독립가옥까지 있다. 이곳의 입주는 일반사회의 전세와 같은 형식으로 아무 때고 신앙촌을 떠날 때는 다시 찾을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박 장로가 이끄는 신앙촌의 공식명칭(문공부에 등록된 교단 이름)은 한국전도관부흥협회- 현재 전국적으로 약 1백만 명의 신도와 약 2천개소의 전도관을 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곳에 입주한 신도들은 워낙 모범적인 독신자(篤信者)들이라서 그런지 어린이를 빼놓고는 모두 공장이나 그 밖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약 1만 5천명(64년도엔 5천명 정도였음)의 신앙촌 주민 가운데 절반가량의 수가 제2신앙촌 안의 각종 기업체에 종사하고 있다. 나머지는 미취학자와 학생, 노약자, 공무원 그리고 일반 회사원들-  이 가운데는 바깥 사회에서도 손꼽히는 무역회사, 생산 기업체 등의 사장과 S공업대학교 학장, 대학교수 등 쟁쟁한 인사들도 많다.

철강공장과 슬레이트 공장 등 중기를 다루는 몇 몇 공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장은 일반 사회의 방직공장이나 제과공장처럼 여자 직공들이 거의 전부였다. 철강공장의 특수 기술자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설이 신앙촌 주민의 손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택 지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철강공장에 들렀을 때 요란한 굉음을 내며 이글이글 불 타오르는 엄청나게 큰 전기로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관계자가 없어 그 용량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전기로가 ‘순전히 신앙촌 자체의 기술진에 의해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에는 다시 한 번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일에 그러하듯이 박 장로 자신의 진두지휘 아래 만들어졌다는 전기로에 대해 그들은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일본의 한 전문가도 신앙촌의 전기로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는 이야기를 신나게 들려준다.

이 전기로의 한 복판에는 한 아름이나 되어 보이는 흑연 기둥이 박혀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열로 쇳덩어리를 녹인다. 용광로의 아래부분은 땅 속에 들어가 있어 그 크기를 알 수 없지만 일단 쇳물이 제대로 녹으면 위로 솟아 올라오면서 한 쪽으로 기울어 쇳물을 쏟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다른 어떤 연료를 쓰는 용광로 제품보다 전기로에서 나온 철제의 질이 가장 좋다는 말도 그들은 잊지 않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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