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껏 한다고 생각하면 못할 일 없다’ (김화옥씨/한일물산 전기부)

한일물산 전기부 김화옥씨(80세)
발행일 발행호수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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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빠진 앞니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 김화옥 권사의 웃음이 건강해 보인다.

#. 걷지 않고 뛴다
“세 발자국만 되도 나는 뛰어가!”
사실이었다. 서늘해진 가을바람을 맞으며 신앙촌 구석구석을 활보하는 김화옥 권사(기장신앙촌. 만80세).

그의 걸음걸이는 힘이 있었고, 움직이는 손길은 잠시도 가만 있지 못했다. 이런 부지런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그는 전기부 정규직원이다. 업무 파트너인 박재호 상무(전기부)는 “나이로만 보면 누구를 쫓아다니기도 힘들 나이에요. 그런데 김화옥 권사님은 하루 일과를 마칠 때가 되면 오히려 더 할 게 없느냐는 식으로 일을 찾아서 하세요. 또 싫어하는 일이 없어요”라며 김 권사를 소개했다.

― 전기부에서 하시는 일은?
“나는 기술자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해요. 기술자가 원하는 도구를 그때그때 얼른 갖다 줘야 개운해요. 그래야 내 몫을 하는 것이 되죠. 빨리 해줘야 시간을 벌 수 있잖아요.”

― 건강의 비결은 무엇인지요.
“늘 하나님 힘으로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일할 조건을 주셨으니 감사하죠. 게으르면 안 되요. 난 된 일을 하려고 하지 수월한 일을 찾지 않아요. 남들이 안 가려 하는 데도 나는 가려고 해요. 그리고 내 점수를 내가 체크해요. 100점을 목표로 생각하고 힘껏 뛰어요. 가서 무엇이든지 힘껏 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못할 것이 없어요. 죽는 날까지요.”
그에게서 젊음이 느껴졌다.

― 하루 일과를 소개하신다면?
“3시나 3시 30분이면 일어나 새벽예배 나가기 전까지 씻고 기도하지요. 길을 가면서도 기도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해요. 그리고 필요 없는 말은 안 하려고 노력하죠. 하나님 일을 하는데 하나님 생각을 해야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기도해요. 기도가 첫째지 다른 것 없어요.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다니려면 늘 하나님 생각해야죠.”

#. 소사신앙촌 40년, 기장신앙촌 10년
그는 1957년 송정리 교회(전남) 입교 후, 서른 살 되는 해인 1959년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였다.
― 어떻게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습니까?
“형님이 전도했어요. 저는 휴전 직후에 입대했기 때문에 군대에선 집회에 참석 할 기회가 없었어요. 결국 제대 후 제가 서른 살 되는 해에 소사신앙촌에 입주했죠.”

― 그럼, 안찰도 받으셨겠군요.
“소사에서 처음 안찰을 받았어요. 제 앞에 어느 영감이 있었어요. 그 영감은 하나님께 ‘다시는 죄 안 지을랍니다’, ‘다시는 죄 안 지을랍니다’ 계속 비는 거예요. 저는 두려웠어요. 드디어 제 차례가 됐고 안찰을 하시는데, 아이들이 체하면 엄마가 손으로 배를 문지르듯이 제 배를 안찰해 주시는데 너무너무 아픈 거예요. ‘아이구, 하나님! 더는 못 참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막 드는 순간에 손을 딱 떼시더라고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권능으로 안찰하심과 동시에 제 마음과 모든 것을 보시면서 죄를 소멸시켜 주셨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안찰을 받을 때는 조금 시원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죽을 정도로 아팠는데 말이죠.”

― 소사에서의 생활은 어땠습니까?
“하나님 자택 부근을 지나는데 향취가 나는 거예요. 그 향기는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우는 아이가 울음을 그칠 정도라고나 할까요. 제 마음은 그렇게 기쁘고 즐거웠어요.
한번은 오만제단에서 하나님께서 예배인도를 하시는데, 강하게 말씀하시며 단상 위를 탁탁 내리치시면 마치 발전기의 불꽃이 튀듯 사방으로 번쩍번쩍 하는 거예요. 불성신으로 제게 확실한 믿음을 주신다는 생각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 기장신앙촌에는 언제 들어오시게 되었습니까?
“1999년 10월, 동부리 사건 때였어요. 당시 소사관장님께서 권유를 하셨지요. 이때다 싶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왔어요. 기장신앙촌에서는 축복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지냈어요. 그 후 장안농장에서 일할 때도 축복이 내린다는 전화가 오면 달려가곤 했어요. 그 다음엔 건설부, 장유공장에서 보조역할도 했고, 지금은 전기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 다시 허락하신 생명
2009년 4월 말경. 김화옥 권사는 뇌출혈로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8월 23일 축복일.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고 지금은 전기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 뇌출혈로 입원하셨었는데 어떻게 다시 일하시고 계신지요.
“하루는 언덕을 오르는데 그날은 유난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어요. 새벽에 일어났는데 입이 잘 안 벌어지고, 말도 힘들고, 밥을 못 먹겠어요. 결국 서울로 갔어요. 의사가 하는 말이 뇌출혈이라며 뇌 속의 핏줄이 터졌다고 설명하더군요. 하나님만 생각했죠. 생명물에 의지했고요. 차츰 좋아져서 소사신앙촌 부근의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고, 통원치료를 하게 되었어요. 결국은 하나님 권능으로 살아난 거예요. 이기게 해 주신 거죠. 제 나이에 이런 병 걸리면 다 죽는데 저는 지금 살아 있잖아요.”

― 당시에 어떤 기도를?
“기도 몇 마디 하려고 하면 눈에서 말도 못하게 눈물이 나왔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문을 하려 해도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왜 그런지 저도 몰라요. 16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까지 울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와요.”
그는 다시금 목이 메여오는 것을 참으려 했다. “한눈 팔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힐 때는 이슬 맺힌 두 눈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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