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③ 향취로 마음이 녹다.

3. 향취로 마음이 녹다.
발행일 발행호수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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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심 관장이 시무했던 일광전도관. 심 관장은 체육대회를 열어 마을 대부분의 아이들을 전도했다. 2.일광전도관 반사와 주교생.(1976년 8월)맨 왼쪽이 심광수 관장이다.

갈현리 ‘전 주민 심방의 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제가 축복일에 가려고 생수통을 들고 나가면 “전도사님, 잘 다녀오세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가장 기쁜 일은 갈현전도관 코흘리개 주일 학생이 장성하여 현재 교역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처음엔 못 알아봤는데, 유기성 관장(서대문교회 부관장)이 갈현전도관 출신이라고 하길래 물어보니 당시 갈현전도관 부인회장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갈현전도관에서 얼마 후 1975년 8월 28일 일광전도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일광으로 발령 받아 시무 중 죽성전도관 김현숙 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죽성전도관 주일학생 중 한 아이가 죽성리 앞바다에 빠져 익사하였으니 장례를 지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죽성리에는 신앙촌 교인의 자녀가 많이 살았는데 물에 빠진 아이는 교인의 자녀가 아니라 죽성리 원주민의 아이였습니다.

시신이 아름답게 피다
김현숙 관장님의 연락을 받고 가니 객사한 시체는 집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속설 때문에 아이의 시신은 죽성리 마을 입구 밭에 짚을 깔아놓고 그 위에 눕혀져 있었습니다. 검사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시신을 함부로 옮길 수도 없었습니다. 시신을 옮기려면 공의(公醫)가 경찰관 입회하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진찰하여 판단해 주면 경찰관이 검사에게 연락을 하고 시신을 매장해도 좋다는 검사의 최종 지시가 있어야 시신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더운 날이라 빨리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오후가 돼서야 검사로부터 시신을 옮겨도 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검사의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전도관 교인들과 주변 관장님들은 시신을 죽은 아이의 집으로 옮겨 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비누로 씻기고 입관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자 죽은 아이는 살아있을 때보다도 더 뽀얗고 예쁘게 피었습니다. 하지만 손목 부위는 아무리 씻겨도 시커멓게 되어 잘 피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이상하게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안 믿는 의사가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맥박을 짚었던 손목이 피지 않았던 것입니다.

촌로들 항의하러 왔다
향취에 마음이 녹아
항의 못하고 뽀얗게 핀
시신 신기하게 바라봐
그런데 우리가 아이를 입관 하는 동안 밖에서는 죽성리 사람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객사한 시신을 집안으로 들여오면 안 되는 속설을 어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마을 촌로 여러 명이 항의를 하기 위해 죽은 아이의 집으로 몰려왔는데 우리들이 아이를 씻기고 입관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지켜보던 그들은 항의는 커녕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항의 하러 온 촌로들이 죽은 아이 집 마당에 들어서자 마당 가득 향취가 진동하는 냄새를 맡고 마음이 녹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기겁을 한 목사
당시 일광전도관에는 부산에서 전직 경찰관이던 김삼석 집사님이란 분이 계셨는데 김삼석 집사님이 전도관을 알게 된 것은 그의 부인 때문이었습니다.

김삼석 집사가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그의 부인은 정신이상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부인의 정신병을 고치려고 경찰관의 박봉으로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보고 마지막엔 용하다는 굿도 해 봤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경찰관을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까지 다 쓰고 빈손이 된 김삼석씨는 부인과 요양 차 일광 변두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이사를 온 김삼석씨는 더 기댈 데도 없었지만 부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기성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목사가 가정방문을 하여 찬송을 인도하려고 하면 부인의 정신병은 더욱 도져서 목사의 턱을 붙잡고 같이 놀아보자고 춤을 추니 목사는 기겁을 하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병원도 가고 굿도 하고
기성교회도 다녀봤지만
낫지 않던 정신이상 증세
생명물로 보름만에 완치

돈도 없고, 굿도 했고, 교회도 나가보았지만 백약이 무효로 부인의 병이 날로 심해지자 김삼석씨는 다른 교회라도 찾아가 보겠다고 새벽에 부인을 업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보니 불이 환하게 켜진 교회 하나를 발견했는데 들어와 보니 그곳이 바로 일광전도관이더라는 것입니다.

김삼석씨가 처음 일광전도관에 왔을 당시에는 김성관장님이 시무하고 계셨는데 제가 일광전도관에 발령받아 갔을 때는 김삼석씨의 부인이 잠시 정상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병이 재발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새벽예배를 마친 후 매일 교인들과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가지고 김삼석씨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생명물을 부인의 눈에 넣게 하고 마시게 했습니다. 오후에도 생명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오후에 찾아가는 시간은 그날 일과에 따라 혼자서 일찍 가기도 하고 늦게 가기도 하고 일정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오후를 보름동안 찾아갔습니다.

`관장님이 곧 오시나보다`
정신이상 증세의 김삼석씨 부인은 보통체격보다 좀 작은 편인데도 정신이상으로 어찌나 힘이 센 지 빗자루로 남자들을 두들겨 패고 행패를 부리면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난동을 부리다가도 갑자기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가면 조금 있다가 제가 생명물을 들고 오더라는 것입니다. 주변 이웃들도 김삼석씨 부인이 난동을 부리다가 조용히 방안으로 들어가 얌전하게 있으면 ‘관장님이 생명물을 가지고 곧 오시나보다’하고 알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명물을 마신 후부터 부인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완벽하게 나아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온갖 방법으로 부인의 병을 고쳐보려고 해도 낫지 않던 병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로 완치가 된 것입니다. 생명물의 권능에 놀란 김삼석씨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여 그 뒤로 온 가족이 일광전도관에 열심히 잘 나오게 되었습니다.

1976년 4월 7일자로 일광전도관이 시찰구로 승격되어 학리 전도관이 지관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때 학리에는 이진철 관장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이 관장님에게 시찰구 내에서 체육대회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만 한 넓은 운동장이 없어서 장소는 일광초등학교 학리분교 앞 모래사장으로 정했습니다.

전도의 장 `체육대회
체육대회에는 학리, 일광 교인들은 물론 주일학생들의 안 믿는 부모님들도 모두 초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신앙촌에서 생산되었던 오렌지주스 가루 여러 봉지를 큰 고무대야에 시원하게 타서 동네 사람들이 오고 갈 때마다 오렌지주스를 권하며 안 바쁘면 체육대회에 참석하자고 했습니다.

체육대회가 열리는 주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참여한 가운데, 모래사장 위에서 펼쳐진 체육대회는 말 그대로 마을 잔치였습니다. 마을 사람들끼리 친목 도모도 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겁게 체육대회를 마쳤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날 이후 마을 아이들 대부분이 전도되어 전도관에는 전도된 아이들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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