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관장 편 ⑤ 장례식에서 지켜 본 생명물의 권능

발행일 발행호수 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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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김지연반사(왼쪽)가 엄마와 언니와 함께 이슬성신절 예배를 드렸다.

장례식에서 지켜 본 생명물의 권능
 
우리교회 대학생 중에는 특이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반사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도되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빠짐없이 교회를 왔지만, 일요일만 되면 안 나오기를 1년 가까이 하다가, 기장 축복일 예배에 참석한 이후부터 주일예배를 나오기 시작했단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어머니가 반대를 하자, 밥도 잘 안 먹고 나름대로 고민을 하니까, 3일정도 지나자 아버지가 불러서 집에서 싫어하는데도 왜 교회를 다니냐는 말에 “교리가 맘에 들어서…”라고 한 마디 한 이후로 반대는 끝났단다.
 
시신의 입에 생명물을 넣어 드리니 넘어가고
생명물로 시신을 씻겨 드리니 활짝 피어나
안 믿던 엄마와 언니도 마침내 신앙촌에
IMF 이후 오랜 공무원 생활을 접은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형편이 점점 어려워졌고, 결국 2005년 여름에는 모든 사업을 정리해야만 했다.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던 생활도 잠시, 그해 11월 14일 ‘몸이 좀 좋지 않다’는 말에 병원으로 후송된 아버지는 불과 10여 분 만에 의식을 잃었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급하게 수혈을 해야 했다.
다른 병원에서 혈액을 공급해 와도 늦겠다는 의사의 말이 있은 얼마 후 운명하셨다는 말에 우리는 응급실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전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버지는 기계에 의지해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으며, 간호사 한 명이 수혈을 계속하고 있었다. 심장쪽에는 전기 충격을 가했는지 어른 손바닥보다 큰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수혈을 마친 간호사가 나가자 지연이는 축복크림을 아버지 심장 주위 멍든 곳에 발라드렸다. 엄마는 믿기지가 않아 ‘눈 좀 떠 보라’는 말만 계속 하면서 축복크림이 묻은 심장을 문질렀다. 그러다 문득 멍든 자리가 사라졌다며 간호사를 불렀지만, 그래도 살아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그 후 지연이가 입을 통해 생명물을 넣어 드리자 기계가 요란하게 뛰면서 수치가 올라가며 심장만 뛰던 호흡이 목까지 뛰었다. 엄마는 놀라서 다시 간호사를 불렀지만, 냉담하게 ‘이제 지체 할 수 없다’며 ‘더 이상 올 가족이 없으면 기계를 꺼야 한다’고 말하면서, off를 누르자 거짓말 같이 숨이 멎었다.
매사 모든 일을 불심에 의지해 생활하던 엄마는 천부교 장으로 치르자는 말에 쉽게 응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지연이의 친구가 몇 해 전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사정이 여의치 않아 천부교 장으로 끝까지 못해 드린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며,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기를 바란다며, 지연이보다 더 열심히 설득을 했고, 시퍼렇던 멍이 없어지고, 생명물이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보지 않았냐는 지연이의 말에 허락이 떨어졌다.
말없이 지켜보던 우리는 장례에 대한 절차며, 상식이 부족한 탓에 많이 분주해졌다.
어쩔 수 없이 허락은 했지만, 엄마는 간간이 내키지 않는 기색과 행동이 역력했다. 다음날 오후 장례반이 입관을 하러 왔을 때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이제 고인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곱게 피어서 가실 수 있게 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입관을 시키는 동안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를 해 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일이 아름답게 풀리도록 해 주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시겠어요?” 망설임 끝에 엄마가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엄마와 언니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보다 얼굴에 살이 올라 통통해지고, 피부도 고와졌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것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는데, 입관예배가 시작되면서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자정이 넘도록 줄을 서서 문상을 하고 갔고, 여러 관장님들의 도움으로 화창한 날씨에 평안히 장례를 끝낼 수 있었다. 
평소에 딸의 권유에 못 이겨 기장을 와도 입구까지만 오고 돌아서서 가시던 어머니였는데, 장례가 끝난 후 신앙촌에 오셨다. 지연이의 걱정과는 달리 이곳저곳을 둘러보시고는 거부감없이 좋아하시면서, 당신이 시집 올 때 ‘친정엄마가 신앙촌 이불을 해 주셨는데, 그걸 덮고 자라서 이 아이가 여기를 다니나 봅니다’라고 하셨다.
이번 2006년 이슬성신절 예배에 엄마와 언니, 그리고 지연이가 함께 하나님께 참 기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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