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보람 안겨준 성전 신축
신앙의 발자취 ②하나님께 지혜와 용기 얻어
성전 건축하고 하나님 은혜 전해
1966년 4월 25일 저는 시온 신학원 전 과정을 수료하고 교역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안찰 받을 때 협회 간사님께서 하나님께 “이 전도사님은 장항에 발령받았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는 “장항?”하고 되물으시며 “처음 개척하는 곳보다 더 어려운 곳이니 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하고 나오려는데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같은 말씀을 반복하셔서 저는 더욱더 굳은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장항전도관에 부임한 날 저녁, 전구를 끼우고 제단 청소를 모두 마쳤습니다. 당시 건물이 그러했듯 장항제단 역시 비가 조금만 와도 지붕 밑에 깐 얇은 판자가 뒤틀려 제단 수리가 급선무였습니다. 첫 발령지에서 잘하지 못하면 다른 어느 곳에 가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제단 수리를 결심하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서신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편지를 잘 받았다고 하시며, 옆에 있던 간사님에게 제단 수리에 보탤 비용과 지붕에 쓸 슬레이트를 저에게 주라고 말씀하시더니 “전도사님, 무엇을 어떻게 해 줄까요?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말해 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당돌하지만 “자전거도 한 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 자전거 한 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하나님께서는 “종각 지으라고 특별히 주는 보조니까 잘 지으라”고 하시며 따로 종각 신축할 보조까지 챙겨 주셨습니다. 말단 초년의 저에게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니 천하를 다 얻은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단 수리와 종각 신축을 위해 난생처음 벽돌도 찍고, 자재 구입을 위해 리어카를 배에 실어 군산까지 가서 사 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모든 공사를 마친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자전거를 타고 바지가 해질 때까지 심방을 다녔습니다.
1967년 6월 5일, 신탄진전도관에 개척 발령을 받았습니다. 제단 부지 마련을 위해 큰 도로변 언덕에 목화가 심어진 밭을 매입하고, 폐 고등공민학교 교실 한 칸을 빌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단에 오르는 길을 닦고 정지 작업을 하며 기초를 다졌는데, 이 광경을 지나가던 40대 남자분이 보고는 “젊은 양반 뭐 짓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교회 짓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분은 “조그마한 돼지우리를 짓는데도 온 가족이 달라붙어 짓는데, 큰 건물을 혼자서 짓고 있는 용기가 대단하네요”라면서 잘해 보라고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이 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어떤 남자분이 기계를 메고 찾아왔습니다. 알고 보니 전에 저에게 말을 걸었던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신탄진 연초제조창 건설공사에 참여한 측량기사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측량한 지점을 여기저기 표시하게 하여 그 선에 맞춰 기초공사를 하면 수평이 맞을 거라며 측량을 끝내고 돌아갔습니다.
이는 저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아신 하나님께서 그 측량기사의 마음을 움직여 보내신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못 할 것이 없다’는 믿음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일은 제가 교역하는데 크나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채 마무리되기 전인 1968년 8월, 저는 대전 대동전도관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수년간 완공되지 못한 공사를 마무리하여 10월 10일에 낙성예배를 드렸습니다.
1969년 9월에는 대전 선화동에 제단 개척을 했습니다. 성남동에 임시 제단을 마련하고 덕소 제단을 모델로 한 아름답고 튼튼한 제단을 신축하여 12월 15일에 낙성 개관 예배를 드렸습니다.
1970년 7월에는 인천 축현, 1971년 2월에는 서울24중앙 신촌에 부임하였으며, 2개월 후인 4월에는 충남 홍성의 시찰장으로 이동 발령되었습니다. 충남은 홍성, 예산, 보령, 청양 4개 군에 제단 10개소, 교역자 여덟 분이 시무하였습니다. 그때 매달 각 제단에서 순회 집회를 가지며 전도에 대한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1974년 4월에는 경북 영천에 시찰장으로 발령받고 첫 주일예배 때 교인들에게 제단을 다시 짓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당시 영천 제단은 처음 지은 건물에 연달아 건물을 지어, 경사진 터에 마치 옹기 굽는 가마를 연상케 했습니다.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저는 곧바로 제단 건물을 허물고 임시로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어떻게 첫날부터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직접 도면을 그리고 건축 허가를 받아 당시로서는 최고의 자재를 사용하여 제단 신축을 마치고 1975년 6월 20일에 개관 예배를 드렸습니다. 서문통에 우뚝 솟은 제단의 위용은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어 장날만 되면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도전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용기로 제단을 짓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크나큰 기쁨과 보람을 안겨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