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교리가 없는 종교들

발행일 발행호수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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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주 성모동산 사기사건’으로 가톨릭교회가 떠들썩하다. 사건의 전말은 나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윤 율리아라는 여성이 1985년 6월 성모상이 눈물을 흘렸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20여 년간 국내외에서 매년 수만 명의 ‘순례객’이 찾아왔었는데 그것이 사기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상, 동산 곳곳에 뿌려진 예수의 피와 살점, 하늘에서 떨어진 성체(가톨릭 미사 때 신부가 신도들에게 먹여주는 하얀 밀떡)와 성체가 살과 피로 변하는 기적이 지난 22년간 나주 성모동산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했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소변에 율신액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미향과 함께 금빛가루가 섞여 나왔고 이 소변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고 선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아픈 곳에 바르거나 마시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모 방송의 ‘PD수첩’이 이 여성과 관련된 현상을 취재한 ‘기적인가, 사기인가-나주 성모동산의 진실’을 방송하여 그녀의 사기 행각을 밝혀 냈다. 공중에서 떨어졌다는 밀떡은 사실은 윤 씨가 손에 들고 있다가 떨어뜨린 것이고, 윤 여인이 꿈에 계시를 받고 직접 손으로 판 샘물에서 나왔다는 ‘기적수’라는 것을 정밀 조사해 오염되어 식수로 부적합한 지하수를 모터로 퍼 올린 것을 알아냈다. 윤 여인의 몸에서 장미향이 난다는 것을 조사해 그녀가 주머니에 항상 ‘향수 헝겊’을 가지고 다녔다는 점도 밝혀 냈다. 또 순례객들이 기부한 거액의 성금으로 윤씨 부부가 땅을 사들여 그들의 재산이 수십 배 이상 늘었다는 사실을 알아 내기도 했다.

20여 년 간이나 영험한 기사와 이적의 현장인 줄 알고 윤 여인에게 속아 왔던 수많은 가톨릭 신자와 비신자들이 방송을 보고서야 속은 것을 깨닫고 분노를 터뜨렸고 가톨릭교회에 강력한 실망을 나타냈다. 그 동안 가톨릭 당국은 윤 여인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했을 뿐 아니라 일부 사제와 신자들은 전적으로 윤 여인의 사기 행각에 동조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뒤늦게 나주 성모동산 사건은 천주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그러나 발뺌을 한다고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윤 여인 사건이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그것이 가끔씩 나타나는 ‘무당식 사기사건’이 아니라 가톨릭이라는 세계의 대표 종교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무리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수십 억의 신자와 웅장한 교회 건물을 과시하는 종교라 할지라도 그 속에 구원의 교리가 없다면 그것은 공허한 것이며 그곳을 찾는 신자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들에게 진정한 구원의 교리가 있어 이를 가르칠 수 있었다면, 신자들이 윤 여인 사건과 같은 황당한 현상에 열광하고 현혹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원을 위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 종교라면, 종교의 존립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인데 정작 그곳에 구원의 교리가 없다면 그 이상의 비극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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