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年斷想] 변치 않음에 대하여

발행일 발행호수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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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는 종교계의 균열과 변질이 유난했던 한 해였다. 전 세계적으로 아동 성추행 집단이라는 오명을 쓰고 항의를 받던 가톨릭에서는 마침내 피해자들이 로마 시내에서 교황청을 향해 데모를 벌여 교황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더니, 한국에서는 4대강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둘러싸고 사제(司祭)들과 상급 교권자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추기경을 성토하고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추기경이 “4대강 개발은 환경적 문제이니 환경 전문가들이 시비를 가릴 일이고 사제는 사목(司牧)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표명한데 대해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신부들이 들고 일어나 추기경의 말을 비아냥거리면서 4대강 개발 반대를 재확인하고 추기경은 용퇴하라는 섬뜩한 항명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다시 가톨릭의 평신도들이 들고 일어나 “그렇게 정의가 구현하고 싶거든 안전한 이곳에서 떠들지 말고 북한에나 가서 정의를 구현하고 순교해 보라”며 신부들을 치고받았다.

이러한 사태는 군대보다 더욱 철저한 상명 하복의 체제를 유지해 왔던 가톨릭의 근본이 이미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템플 스테이 예산이 삭감됐다고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누구누구의 사찰 출입을 금지한다고 공포하더니 마치 이권에 따라 찬반을 결정하는 것처럼 느닷없이 4대강 개발을 반대한다고 성명했다. 남을 미워하거나 재물을 탐내는 것과 같은 인간 속의 나쁜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산문에 들어가 목탁을 두드리며 정진(精進)하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불교가 수양은 내팽개치고 세속인과 다를바 없는 탐욕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사찰에서의 행사는 당연히 자기네들의 예산으로 하고 예산이 없으면 안 하면 될 일이지 국가의 예산을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은 미우니 절에 오지 말라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러한 행태는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一切唯心造)’라고 오직 마음의 수양을 강조한 옛 고승(高僧)들의 오랜 미덕마저 크게 변질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기독교는 또 어떠한가? 자신들의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교리인 기독교는 태생적으로 철저한 유아독존의 종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에서는 다른 종교와 어깨를 같이하고 짝을 짓고 있는 흥미로운 현상이 당연한 것처럼 벌어지고 있다. 수녀들이 사찰에 가서 성가를 부르고 승려가 교회에 가서 설교를 한다. 불교의 사찰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고 기독교 교회에는 불상까지는 몰라도 사찰처럼 촛불을 켜놓고 예배를 하게 될 날이 머지않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겉으로는 모든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여 화합하고 상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이 믿는 신의 행방조차 잃어버리고 완전히 변질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비록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영원한 가치와 진리는 변하지 않는 법이다. 혼돈하는 세상과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비추는 등불의 빛은 변함이 없는 가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신의 전통과 교리가 세상과 사람에 따라 변질된다면 그것은 이미 세상을 비출 빛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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