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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신’이 임하시니 온 몸이 뜨거워지며 마음이 포근해져

박영례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37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6.25 전쟁 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생계가 막막해진 저희 가족은 먹고살 길을 찾아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언니가 일찍 출가한 후 장녀 역할을 했던 저는 어머니를 도와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 가려고 동대문시장의 상인들 틈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열일곱 살 사춘기에 하루하루가 고달팠던 저는 마음으로 의지할 곳을 찾고 싶었으며 ‘하나님을 믿으면 […]

영원한 천국을 알았으니 세상에 이런 복이 또 어디 있나

조성연 권사(2) / 덕소신앙촌

1958년 6월에는 태안전도관의 개관집회가 열려서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는 은혜를 받아 병이 나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20대의 아가씨는 자신이 앉은뱅이였는데 이 집회에서 다리가 펴졌다고 했으며, 벙어리 여자 분은 말문이 열렸다면서 […]

한국 땅에 의인이 나타나셨어요! 전도관에 나와 보세요!

조성연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25년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었던 저희 집은 크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자상하신 부모님 슬하에서 화목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힘든 일을 하지 않았던 저는 열아홉 살에 결혼한 후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사를 돌보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새벽부터 식구들과 일꾼들의 식사 준비며 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

해일을 일으키시며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

홍창홍 승사(3) / 기장신앙촌

그 후 1968년에 저는 관장님의 권유를 받아 교역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서울 각지에 중앙전도관이 세워지고 그 산하에 십여 개의 제단이 개척되면서 전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저는 서울 3중앙 산하의 보문동제단과 성수동제단에서 시무하면서 교인 분들과 함께 전도를 했습니다. 그 무렵 군대에 있던 둘째 남동생이 의병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숨을 […]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 짓지 말라’는 말씀을 생의 좌우명으로

홍창홍 승사(2) / 서대문교회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저는 ‘장로님께서 나를 처음 보실 텐데 어떻게 내 죄를 아시나?’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신가. 은혜를 내려서 죄를 씻어 주시는 분이 어찌 내가 지은 죄를 모르시겠나. 안찰하시며 죄를 지적하시는 것도 감람나무가 아니시면 하실 수 없구나.’ 그렇게 깨달아지면서 의문을 […]

‘동방의 해돋는 곳 한국은 복 받은 나라’라는 말씀에 감명

홍창홍 승사(1) / 서대문교회

저는 194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8.15 해방 후에 온 가족이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았는데, 1950년 육이오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월남한 후부터 장로교회에 꾸준히 다니셨으며 저도 어머니를 따라 가끔씩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서울의 고모님 댁에서 지내며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장로교인이신 고모님(故 홍해일 권사)이 남산에서 열리는 박태선 […]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 발표하실 때 ‘과연 하나님’ 깨달아

정국모 전직 관장(3) / 기장신앙촌

영월제단이 완공된 후에는 한창 자라나는 고등학생들이 많이 전도되었습니다. 저는 설교 시간마다 감람나무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학생들은 그런 이야기를 무척 생소하고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말씀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먼저 인간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딱딱한 설교보다는 편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간단한 성경 구절을 풀어 주었더니 차츰차츰 […]

‘죄를 가지고는 천국 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마음에 울려

정국모 전직 관장(2) / 기장신앙촌

저희 어머니는 그 전까지 거성 장로교회에 열심히 다니셨는데, 거성 교회에 발길을 끊고 전도관으로 나가게 되자 목사가 몇 번이나 찾아와서 “어떻게 하다 이단에 현혹되었습니까?” 하며 장로교회로 돌아오기를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저는 이제 전도관 사람입니다. 받은 바 은혜가 확실한데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앞으로는 은혜 받은 곳으로 가겠습니다.” 하며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그 후로 몇 […]

박장로님은 이슬같은 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가 틀림없어

정국모 전직관장(1) / 기장신앙촌

1927년 부산시 화명동에서 태어난 저는 장로교회 전도사인 어머니(故 유봉수 권사)를 따라 열심히 주일학교에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후 일본 동경에서 공부할 때는 주변에 교회를 찾을 수 없어 나가지 못하다가 귀국 후에 다시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가 지루하게 느껴지고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예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교회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

허락하시는 생명의 은혜 속에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박인화 권사(3) / 덕소신앙촌

당시 일곱 살이던 제 아들 금석이는 귓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다섯 살 때 홍역을 하며 열이 많이 오른 뒤로 귀에서 자주 고름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동네 병원에 가서 주사를 한 대 맞으면 괜찮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사를 많이 맞아야 고름이 멈추었습니다. 감기라도 걸려서 열이 오르게 되면 어김없이 귀에서 고름이 흘러나왔으며 나중에는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한 물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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