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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교회에는 은혜가 없으니 죄를 씻을 수가 없어

김엄정 승사(2) / 영덕교회

그렇게 향취를 맡은 후로 제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기도처에서 예배드릴 때 ‘여기가 이단이라는데…….’ 하고 교인들을 둘러보던 저는 어느새 교인들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불렀으며, 예배를 마치고 나면 다음 날 예배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동생은 매주 일요일마다 대신동의 부산전도관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오신다면서, 대구로 가기 전에 꼭 그 예배에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

목사의 비방에 ‘전도관은 어떤 곳일까’ 호기심 생겨

김엄정 승사(1) / 영덕교회

저는 1935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집 안에 삼신(三神)을 모시고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었던 저희 집은 교회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어른들을 따라 장로교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는 어린 마음에 큰 놀라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영원히 고통을 받는 지옥이 참으로 무섭게 느껴졌으며 나도 아름다운 […]

어려울 때 힘과 용기를 주신 하나님 은혜로 이 길을 달려와

박영례 권사(3) / 덕소신앙촌

제과 공장을 지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장 건물에 함석지붕을 올리기 위해 함석을 운반하는데, 제가 함석을 내리다가 잘못하여 그만 발등을 찍고 말았습니다. 무거운 함석 뭉치에 찍혀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가고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은 저는 심한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 건설대원이 저를 업고 하나님께로 급히 달려가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바닥에 내려놓으라 […]

예배실에 향취가 진동할 때면 가슴 가득히 기쁨이 차올라

박영례 권사(2) / 덕소신앙촌

집회에 참석하며 은혜를 받고 보니 ‘이렇게 귀한 은혜를 나만 받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머니를 집회장에 모셔 왔습니다. 어머니(故 이홍대 권사)는 저와 함께 집회가 끝날 때까지 참석하셨는데 하루는 예배 시간에 가슴이 너무나 뜨겁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는 그 뜨거움이 사라지고 머리부터 가슴까지 시원하고 상쾌해진다면서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구원을 얻으려면 성신으로 […]

‘불성신’이 임하시니 온 몸이 뜨거워지며 마음이 포근해져

박영례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37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6.25 전쟁 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생계가 막막해진 저희 가족은 먹고살 길을 찾아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언니가 일찍 출가한 후 장녀 역할을 했던 저는 어머니를 도와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 가려고 동대문시장의 상인들 틈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열일곱 살 사춘기에 하루하루가 고달팠던 저는 마음으로 의지할 곳을 찾고 싶었으며 ‘하나님을 믿으면 […]

영원한 천국을 알았으니 세상에 이런 복이 또 어디 있나

조성연 권사(2) / 덕소신앙촌

1958년 6월에는 태안전도관의 개관집회가 열려서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는 은혜를 받아 병이 나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20대의 아가씨는 자신이 앉은뱅이였는데 이 집회에서 다리가 펴졌다고 했으며, 벙어리 여자 분은 말문이 열렸다면서 […]

한국 땅에 의인이 나타나셨어요! 전도관에 나와 보세요!

조성연 권사(1) / 덕소신앙촌

저는 1925년 충청남도 서천군 문산면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었던 저희 집은 크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자상하신 부모님 슬하에서 화목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힘든 일을 하지 않았던 저는 열아홉 살에 결혼한 후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사를 돌보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새벽부터 식구들과 일꾼들의 식사 준비며 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

해일을 일으키시며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

홍창홍 승사(3) / 기장신앙촌

그 후 1968년에 저는 관장님의 권유를 받아 교역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서울 각지에 중앙전도관이 세워지고 그 산하에 십여 개의 제단이 개척되면서 전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저는 서울 3중앙 산하의 보문동제단과 성수동제단에서 시무하면서 교인 분들과 함께 전도를 했습니다. 그 무렵 군대에 있던 둘째 남동생이 의병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숨을 […]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 짓지 말라’는 말씀을 생의 좌우명으로

홍창홍 승사(2) / 서대문교회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저는 ‘장로님께서 나를 처음 보실 텐데 어떻게 내 죄를 아시나?’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신가. 은혜를 내려서 죄를 씻어 주시는 분이 어찌 내가 지은 죄를 모르시겠나. 안찰하시며 죄를 지적하시는 것도 감람나무가 아니시면 하실 수 없구나.’ 그렇게 깨달아지면서 의문을 […]

‘동방의 해돋는 곳 한국은 복 받은 나라’라는 말씀에 감명

홍창홍 승사(1) / 서대문교회

저는 194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8.15 해방 후에 온 가족이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았는데, 1950년 육이오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월남한 후부터 장로교회에 꾸준히 다니셨으며 저도 어머니를 따라 가끔씩 예배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서울의 고모님 댁에서 지내며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장로교인이신 고모님(故 홍해일 권사)이 남산에서 열리는 박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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