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과 한의학(韓醫學)
한방 부인과 이인선 교수 건강 칼럼세상에는 똑같은 모습의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같은 오장육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기능의 허(虛)하고 실(實)한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독특한 생리기능을 발휘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러한 차이가 4가지의 큰 특징을 가진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체질’이라 하며, 체질의 특이성에 의해 사람들은 성격이나 음식의 기호, 체격, 자주 걸리는 질환까지도 차이가 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어떤 사람은 식중독에 걸려 두드러기가 나거나 소화가 안 되어서 두통을 일으키고 구역질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러한 예는 약물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작용을 하는 보약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땀을 내서 병을 치료하는 발한(發汗) 요법의 일종인 한증이나 사우나로 감기가 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땀을 내면 오히려 기운이 빠지면서 증세가 더욱 심해지고 마침내 천식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봄에서 여름까지는 몸이 노곤하여 쩔쩔매다가도 찬바람이 불고 가을로 접어들면 생기가 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을부터 혈압이 오르는 사람도 있으며, 또 이와 반대인 사람도 있다.
조선 말기 이제마(李濟馬)라는 분이 사람마다 이러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관찰하여 각각 독특한 생리적 특성과 질병의 진행 과정을 체질 의학이라는 ‘사상의학(四象醫學)’으로 정립시켜 만들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은 그 성격이나 감정적 특징[성정(性情)]에 따라 태양인(太陽人), 태음인(太陰人), 소양인(少陽人), 소음인(少陰人)의 네 가지 체질로 구분된다. 즉, 사람의 본성은 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그 체질적 특성의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이에 따라 인체의 장부의 발달정도가 다르게 태어난다. 태양인은 폐가 크고 간이 작으며〔肺大而肝小者〕, 태음인은 간이 크고 폐가 작고〔肝大而肺小者〕, 소양인은 소화기가 크고 신장이 작으며〔脾大而腎小者〕, 소음인은 신장이 크고 소화기가 작다〔腎大而脾小者〕. 이런 이유로 건강한 상태에도 생리기능의 장단점이 다르고 병이 나도 질병의 전개과정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건강을 해치게 되는 원인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심하게 일어나고 이것이 신체 내부 기운의 편차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즉 태양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적으로 격동하기를 잘하는데 이로 인해 마치 휘발유가 불에 타 없어지듯이 몸의 기운을 한꺼번에 소진해버리는 반면, 태음인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참으며 이것이 지나쳐 심장에 열이 쌓이거나 심하면 기운이 막혀 돌지 않게 되는 것처럼 같은 자극이 서로 다른 질병양상을 띄게 된다.
결국 질병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오로지 내부에서 자기의 본성을 잘못 다스려 나타나는 것이며, 사람의 수양 여부에 따라 수명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사상체질의학은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의 질병관과 부합되며, 특히 장년이후의 생활습관병인 성인병과 관련이 깊다. 또한 질병의 원인을 개인의 수양에 두며 체질에 따른 섭생법을 달리하는 등 예방의학적 측면에서도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최근에는 8상, 5상, 16상 등 체질을 서로 다르게 분류하기도 하며 체질감별을 위한 방법으로 O-ring test를 이용하거나, 맥을 짚는다거나 특정한 물질에 대한 반응을 보는 등의 여러 방법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제마의 사상체질 이론과는 다른 면이 많다.
/동의대 한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