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천국을 경험하고 진정 살길을 찾았다고 느껴”
<신앙체험기 499회 춘천교회 이부희 권사 1편>저는 1934년생으로 스무 살 무렵에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술꾼이었습니다. 광주에 살았던 저는 술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술을 찾는 제 모습이 너무 싫어서 신앙의 힘을 빌려 술을 끊어보고자 가까운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교회에 다니며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해보았지만 술을 끊기란 쉽지 않았고, 외려 술만 먹으면 교회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곤 했습니다. 술에 취한 저는 목사에게 왜 교회에 다녀도 술이 끊어지지 않느냐, 이렇게 나쁜 짓을 해도 하나님만 부르면 천국 가는 것이냐며 화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어르고 달래보려던 목사님도 계속되는 저의 행패를 못 이겨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새로운 목사가 부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저는 입영통지서를 받고 입대하여 대구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군 생활에 적응 중이던 1957년의 어느 날 부대와 가까운 수성동에 박태선 장로님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심을 발표하기 전이셔서 다들 박태선 장로님이라고 부를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는 많은 인파가 몰린다는 말에 저희 부대에서는 그 지역을 순찰하기로 하였는데, 저는 새벽 시간대 순찰을 맡게 되었습니다.
집회장에 가보니 새벽임에도 천막 안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배드리는 모습을 구경하던 중 박 장로님께서 안수를 해주신다기에 저도 얼떨결에 안수를 받게 되었는데 박 장로님의 손이 머리에 ‘탁’ 하고 떨어지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머리가 점점 맑아지더니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분이 무척 상쾌하고 좋았던 저는 집회기간동안 매일 새벽 집회장에 순찰을 하러 가서 일부러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받은 이후 박 장로님에 대해 큰 호감과 신뢰가 생겼지만 신앙심이 크게 없던 터라 시간이 지나며 그 일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 후 196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광주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있었는데, 장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광주전도관에 사람들이 모여 기차를 타고 덕소신앙촌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덕소에 가서 박 장로님의 설교도 듣고, 안찰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 과거 대구에서 안수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가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광주에서 100여 명이 덕소신앙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100여 명의 사람은 광주전도관 장시춘 관장님의 안내에 따라 서울로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듣기로는 덕소신앙촌에 가려고 열차 한 칸을 통째로 대절했다고 하였습니다.
밤새 달려 서울역에 도착해 보니 새벽이 다 되었고 덕소신앙촌에서 온 버스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덕소신앙촌에 도착하니 아침이 되어서 관장님을 따라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공장에서 직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찬송을 부르며 직물을 짜고 있었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가가 어찌나 듣기 좋던지 이렇게 아름다운 찬송이 흐르는 곳에 살면 자연스레 술도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식당에 도착해 뜨끈한 갈비탕을 먹은 저희는 박 장로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소예배실로 향했습니다. 박 장로님이 어떤 분인지 자세히 알고 싶었던 저는 예배실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윽고 박 장로님께서 예배실 안으로 들어오시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박 장로님 얼굴이 목화송이같이 환하셔서 무척 귀해 보이는 인상이셨습니다. 그런데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중 어디선가 과일 향기 같은 것이 솔솔 나더니 점점 짙어지며 강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진한 향을 오래 맡으면 아무리 좋은 향이라도 머리가 아프기 마련인데, 이 향기는 맡으면 맡을수록 더 맡고 싶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참 기분 좋은 향기라고 생각하던 차에 설교를 마치신 박 장로님께서 안찰을 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줄을 섰는데 앞에 서서 안찰을 받은 사람들이 울면서 나오기도 하고, 소리를 꽥 지르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안찰하시기에 저리도 아파하나 의문이 생길 때쯤 줄이 점점 줄어들어서 제 바로 앞사람 차례가 되었습니다. 앞사람이 안찰 받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장로님 손이 배에 닿기도 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들 엄살을 부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박 장로님 앞에 가서 안찰을 받기 위해 누웠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는 순간 아랫배가 비틀어지게 아픈 것이었습니다. 너무 아파 배를 쳐다보니 박 장로님 손은 아직 제 배에 닿지도 않았을뿐더러, 놀랍게도 그 분의 손에서 불꽃이 번쩍번쩍 나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죽기 살기로 통증을 참다가 결국 “주여!” 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통증이 서서히 사그라들며 배 속이 시원해질 때쯤 박 장로님께서 “이제부터 전도관에 나오세요” 하시며 안찰을 마치셨습니다. 저는 그 즉시 “예!” 하고 대답하고 광주로 돌아가서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안찰을 받은 이후로 인생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술을 끊게 된 것이었습니다. 전역한 후로 다시 술을 먹기 시작한 저였는데 이제 술이라면 누가 권해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싫어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그 뒤로 더욱 착실히 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하나님 집회에서 우연히 안수 받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느껴
덕소신앙촌에 가서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집에 돌아오니 그렇게 좋아하던 술이 입에도 대기 싫어져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마신 후로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불같던 성격이 온유해져
1960년대 후반에는 전주전도관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전주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주시고 생명물도 축복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물을 받아와서 교회 마당 한 곳에 물통을 모아두었고, 저도 깨끗한 통에 물을 받아 보자기로 곱게 싸서 마당에 함께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마치시고 물통이 있는 쪽으로 가셔서 물통을 향해 쉭쉭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더니 제 물통이 있는 방향으로 한 번 더 축복해 주신 뒤 차를 타고 떠나셨습니다.
저는 축복해 주신 물을 소중하게 가져와서 집에 두었는데, 그 물을 받아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마실 때마다 박하사탕같이 시원한 향기가 맡아졌는데, 예전에도 관장님들께서 생명물을 한 컵씩 주신 적이 있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마신 후로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와 교회 건물, 풀 한 포기까지 시선이 가는 모든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을 보는 듯했고, 이웃을 만나면 가족처럼 반가워하며 인사를 건네니 시비가 걸리거나 기분 상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또 불쌍한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견딜 수 없어서 수중에 있는 돈을 다 꺼내서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성미가 불같았던 제가 매일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다니고 너무 선해졌다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습니다. 생명물의 권능으로 마음의 천국을 경험한 저는 진정 살길을 찾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축복해 주신 생명물을 다 마셔서 먹지 못하게 되니 다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생명물이 진짜 하늘 세계의 물이며 하나님의 권능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함께 보는 신앙체험기
“마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은혜”
이번 신앙체험기에는 하나님께 안찰을 받고 마음과 행동이 변화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하나님 은혜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분들의 신앙체험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그중 두 분의 체험담을 발췌하여 함께 싣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모든 것이 아름다워
1958년 소사신앙촌은 놀라운 속도로 변해 갔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면 집이 생기고 공장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욕탕도 만들어 주셨는데, 저는 그곳의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침저녁으로 목욕탕을 축복해 주셨고 그때마다 저는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신앙촌 안에서 은혜를 받고 살다 보니 시인 아닌 시인이 되었습니다. 따사롭게 빛나는 햇빛도, 바람 부는 언덕도, 공중에 나는 새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으며, 이 모든 자연의 이치를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 길바닥에 툭 튀어나온 돌을 보면 저 돌에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져 다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그 돌을 치워야만 했고, 만약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면 괴로워서 못 견딜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죄를 의식으로 분별하게 되었으며 제 마음이 솜같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기천 권사/동인천교회
하나님께 안찰 받고 새사람이 돼
당시 저는 스프링 공장장도 맡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분이 입금은 시키지 않고 물건(스프링)만 요구하여서 서로 다투다가 심하게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전화로 “아니, 조 공장장이 사람을 쳐? 그놈의 성질이 아직도 남았구만. 오라구! 안찰받아야 되겠구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갔더니 양쪽 겨드랑이를 두 손으로 문질러 주시는데 어찌나 아픈지 갈비뼈를 들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쿠!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며 저는 애원하였습니다. 그때부터 누가 옆에서 큰소리만 쳐도 부르르 떨리면서 거칠고 험악한 행동들이 자연히 싫어지게 되었으며, 정말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보잘것없는 자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느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셨을까 지금에 와서 느껴지며, 잘 받들어 드리지 못한 죄, 눈물로 용서를 빕니다.
조남준 권사/기장신앙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