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26일 – 신앙촌을 사칭하는 일들이 생기기도
“기성교회의 내분과 난투극은 사회의 불신을 초래”1960년 9월 26일자 신앙신보는 1면 톱기사에서 당시에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던 기성교회의 내분과 난투극을 질타하고 국민을 선도하고 계몽하는 종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고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사회전반에 걸쳐 혁신의 기운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교계만은 과거의 부패성을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일반 불신사회에 주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을 선도하고 계몽하자는 새로운 운동이 태동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반면에 주도권을 위한 교회내의 분쟁은 추악한 난투극을 연출하며 사회인의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제4회 부천군민 친선 체육대회가 소사북국민학교에서 개최되었는데 신앙촌 체육부에서 참석하여 종합성적 1등을 획득하여 우승기를 차지하였다는 기사가 게재되어 있다.신앙신보는 또 당진 지구의 부흥상을 전하면서 “지방민들의 전도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인하여 그간의 침체상태를 타개하고 현저한 발전을 보이고 있는 바 종래의 4개 기도처가 배가하여 8개 기도처로 확장되었다.”라고 하였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에도 제단을 신축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간성 전도관에서는 지난 7월 5일 이래 성도일동이 일치 단결하여 아담한 목조건물을 신축하였다.”라고 보도하였다.
당시에도 신앙촌을 사칭하는 무리들이 많았던 듯 충남 공주에서 이창규라는 자가 ‘무형교’를 만들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있다.“충남 공주에서 사이비 종교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였다고 한다. 즉 공주에 거주하는 김형식과 이창규는 4292년 5월부터 동년 8월까지, 어떠한 교명도 없이 무형의 원리에 의하여 여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으며 모든 질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괴상 망측한 종교를 전파하여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피해가 생겼다고 하는데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 35명 정도가 집단으로 거주하며 무려 500 만 환이나 되는 거액을 편취 당했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공주의 본거지를 ‘신앙촌’이라 사칭하여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