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김영래 /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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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 /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달 26일부터 제283회 임시국회가 개회되었으나, 개회식은 물론 각종 상임위원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못한 채 파행 운영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야당이 대통령의 사과를 비롯한 5개의 조건을 내걸며, 국회 개회를 저지하고 있어 6월 국회는 결국 지난 달 23일 한나라당이 친박연대 등과 국회 개회를 요구할 수 밖에 없었다. 국회는 형식상 개회되었지만, 이후 야당은 비정규직 보호법을 다루는 환경노동위원회는 물론 미디어법과 같은 쟁점 법안을 다룰 관련 상임위 개최에 응하지 않고 있어 무더운 여름 날씨와 같이 국회가 국민을 짜증나게 하고 있다.

국회가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과 같은 중요 법안을 다루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서민들은 피멍이 들고 있다. 특히 지난 1일부터 시행되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개정되지 못함으로서 전국 곳곳의 중소작업장에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어 내일의 끼니를 염려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대량 해고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과연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가족의 생명줄인 일자리를 잃어 희망 없이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맺힌 절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제18대 국회는 지난 해 5월 말 임기 개시부터 지금까지 거의 여야 정당간의 정쟁으로 역대 최악의 국회상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해 연말과 연초에는 쇠망치와 전기톱은 물론 각종 활극이 벌어져 국회가 싸움판으로 변하였는가 하면, 심지어 민의의 전당에 입법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등장하였으며, 이런 상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국회가 품위 있는 정치인들의 토론장이 아닌 여야가 상호 적이 되어 전쟁터로 변하였으니, 토론장의 어원을 가진 영국 국회의 표현인 ‘parliament’ 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되었다.

국회가 이렇게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야 정당의 정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파행의 책임은 우선 169석이라는 절대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말로만 덩치 큰 여당이지 당내 화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84석의 야당에 끌려 다니고 있다.

야당도 국회 파행에 절대적인 책임이 있다. 국회에서 야당의 역할은 거대 여당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 차기 수권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야당은 수권 정당의 모습은커녕,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야당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있다.

야당이 대통령의 사과 등을 국회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이를 여권이 수용하지 않으면 국회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은 야당 국회의원 스스로 직무를 포기하는 행위이다. 설령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더라도 이는 토론장인 국회 내에서 문제를 제기, 해결해야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회의 문을 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야당이 정부정책의 반대에만 치중하기 보다는 참신한 정책 경쟁을 통한 대안 정당으로 태어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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