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좌파가 나아갈 길
박효종 /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한국의 좌파는 지난 10년 동안 성업중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민심을 잃고 날개도 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과 총선의 현저한 특징이라면 단연 좌파의 몰락과 좌파 정치인들의 퇴장이었다. 2008년 세상은 바뀌었고, 국민들로부터 퇴장명령을 받은 좌파는 갑자기 초라해졌다. 이른바 ‘폐족(廢族)’의 운명에 직면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선 패배 이후로 좌파는 권력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것 같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안간힘을 쓰듯, 때 아닌 ‘촛불’에 올인하는 모습이 과히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정권을 내놓았으면 왜 국민들이 레드카드를 던졌는지 반추하고 반성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권력을 내놓은 좌파는 왜 허망한 ‘권불십년(權不十年)’의 운명을 맞게 된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제대로 된 반성문을 쓸 때 비로소 기사회생하는 기회가 오는 것이지, 대선에 불복하면서 행여 권력의 기회가 올까봐 ‘촛불’ 주위에 몰려든다면 희망이 없다.
반성거리는 많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좌파의 가치관과 비전, 어젠다와 담론은 새로운 시대와 부조화한, 낡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좌파처럼 대한민국 과거에 대해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정치 사회세력도 없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건국 산업화세대는 오직 친일 친미를 방패삼아 기득권을 누린 세대였을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줄곧 불의와 기회주의의 역사로만 조망하던 그 외곬의 편벽됨은 시대적 총아로 부상하고 있는 신(新)산업화세력에게 ‘편안함’보다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정보화세대에게 좌파의 어젠다는 시대를 앞서나가는 ‘선각자적 비전’보다 시대착오적인 ‘퇴영적 비전’으로 읽혀졌다.
또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이 ‘빨갱이’로 불리운 과거에 대한 한을 잊지 못하면서도 상대방인 우파에 대해서는 조그만 흠결만 있으면 일본을 일본인보다 더 사랑한 ‘친일파’나 미국을 미국인보다 더 사랑한 ‘친미파’로 낙인찍음으로써 주홍글씨를 새기려 하였다.
이제 좌파는 ‘열린 민족주의’와 문명사적 가치를 흡입하기를 주저하며 ‘평화애호세력’이나 ‘민주개혁세력’으로 자처하는 것만으로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없음을 명백히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호(號)의 선장이 된 이명박 정부의 책무는 크다. 선진화를 내세우고 실용을 내세운 것이 이 정부다. 하지만 그 선진화와 실용은 ‘빈상자’여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이리저리 좌고우면하면서 헤멜 시간이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파와 좌파를 아우를 화두의 목적으로 ‘실용’을 내세웠다면, 그것은 진정성이 결여된 임기응변에 불과하다. 이정부의 ‘실용’은 명실공히 한국의 헌법적 가치와 헌법정신을 전제로 하는 실용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좌파가 ‘오버’하고 있는 각종 행태를 법과 원칙에 의하여 분명히 선을 그을 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