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39) 허위보도 매체들과 싸우다
전국에서 교회 신축, 교회마다 심방 전도1994년 3월 26일 영등포 경찰서에 가서 ‘KBS 불공정 허위방영에 대한 규탄 집회’를 신청하자 경찰서 측에서 하는 말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6조에 기록된 대로 옥외 집회는 집회하기 48시간 이전에 신청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회를 허가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영등포 경찰서 정보과장 김윤수, 형사담당 정광철 씨를 만나 집회를 허가해달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그럼, 좋습니다. 이 집회 신청을 접수하지 못하겠다면 우리는 집회를 강행하겠습니다. 직접 두 분의 얼굴을 뵙고 말씀드렸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정보과장 김윤수는 저를 붙잡고 “대화로 풀어보십시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화로 풀려면 KBS 사장을 만나게 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정보과장은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에 관한 것은 사장보다도 실제 프로그램의 담당자나 그 책임자를 만나는 것이 효과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줄 테니까 집회를 안 할 수 있습니까?”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해 봐야 결정이 될 것입니다. 일단 만나게 해 주시오.”
그래서 그날 밤에 KBS2 유규만 국장과 차갑진 부장을 KBS 방송국에서 만났습니다. 우리가 방송국에 갔을 때 천부교를 음해하려는 측의 사람들이 벌써 방송국에 와 있는 것을 보고 천부교를 비방하는 사람들의 음모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 관계자를 만나
“왜 음해세력들 말만
듣고 우리 말은 들어
보지도 않습니까?”따져
방송국 관계자를 만난 저는 “천부교를 취재하려면 우리한테도 사실 확인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천부교를 음해하려는 쪽의 말만 듣고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을 방송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공영방송이 그러면 되겠습니까?”라고 1시간 반 가량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신앙촌에 관한 내용 일부를 삭제하여 방영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그 결과 3월 27일 일요일에 방영된 KBS2 추적 60분에 신앙촌에 대한 음해 내용이 많은 부분이 삭제되어 방영될 수 있었습니다.
1994년 4월 26일 전국에 있는 공석제단에 다니는 중에 전라도 화순 군내에 있던 청풍 탄광을 답사했습니다.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신석리 산 24-1번지에 위치한 청풍 탄광은 1957년 소사신앙촌에서 공장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운영하던 탄광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전국 순회 집회를 하시느라 시간이 없으신데도 불구하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오셔서 작업 현장을 둘러보시고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해 주셨다고 합니다. 신앙촌의 역사와 함께 했던 탄광은 폐광된지 오래되어 탄광의 입구만 겨우 남아 있었고 주변에는 풀만 무성했습니다.
지방 업무 도중에
소사신앙촌 공장 연료
공급하던 청풍 탄광
보고 감개무량
1994년 6월 6일에는 한국 천부교 서대문교회 개축예배가 있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위치한 서대문교회는 1970년도에 신축한 이래 25년 간 여러 번의 부분적인 보수공사는 있었으나 이번처럼 대대적인 보수, 개축공사를 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이길원 중부지역 총무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어 남부지역 총무인 저의 축사가 있었으며 교역자들의 축하 찬송과 양승빈 군의 바이올린 독주가 있었습니다. 또 서원식 관장의 설교와 개축 경과 보고, 공로패 증정이 있었습니다.
1994년 7월 4일 교역자 간부 교육이 부산 4중앙 범일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주일학생 여름신앙학교를 앞두고 24일에는 신앙촌에서 반사강습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반사들은 반사강습회에서 배운 하나님 말씀과 찬송으로 각 교회에 가서 주일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또 소사신앙촌 교회에서 학생 여름신앙교육이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3일간 열려 참석한 학생들이 하나님 말씀을 더욱 깊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KBS2 추적 60분’ 방송 사건 이후에도 신앙촌에 대한 악의적인 언론보도는 계속 되었습니다.
1994년 8월 5일에는 부산매일, 창원에 있는 경남신문과 마산에 있는 동남일보에서, 6일에는 울산에 있는 경상일보에서, 10일에는 울산 매일 신문에서 신앙촌에 대한 비방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래서 8월 11일에 부산 매일, 경남 신문, 울산 매일 신문사의 담당 기자를 신앙촌으로 불러 강력 항의 하고, 다음 날인 12일에 각 신문에 정정기사를 보도하도록 했습니다.
1994년 8월 14일부터 15일까지 홍성교회에서 청년신앙교육을 했습니다. 마당이 넓은 홍성교회는 전주교회와 마찬가지로 큰 행사를 하기에 좋았습니다.
1994년 9월 25일은 축복일 이었습니다. 그날은 현재 기장신앙촌 운수부 옆에 있는 남자 교역자 및 지방교인들을 위한 숙소가 보수 및 신축된 날입니다. 지방 교인들은 축복일 당일 예배 시간 안에 신앙촌에 도착할 수 없기 때문에 축복일 전날 저녁에 미리 와서 새로 지어진 숙소에서 자고 다음 날 예배드릴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그날은 축복일 예배를 마치고 전체 지방 교인들과 함께 자연보호 운동을 했습니다. 신앙촌 주변과 매립지 쪽의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하면서 자연보호의 중요성은 물론 하나님의 성지인 신앙촌을 더욱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994년 10월 3일 공석제단이던 영덕교회의 개축예배가 있었습니다. 영덕교회 개축은 봄부터 대구교회에 시무하던 정성기 관장님이 앞장서고 경북에 있는 여러 교인들이 뜻을 모아 이뤄낸 결실이었습니다. 축하예배는 낮 1시부터 남부지역 총무인 저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이길원 중부지역 총무의 축사, 정성기 관장의 경과보고, 서원식 감독의 설교, 공로패 증정 등의 순서가 있었습니다.
“갑동이가 다니는
교회에서 왔습니다.
앞으로도 교회에
잘 보내 주십시오”
1995년 1월 1일 새벽예배 전교인 참석 운동으로 특별 예배를 드렸습니다. “금년도는 전도를 많이 하는 해로 정해서 열심히 뛰어보자”는 목표를 발표하고 부산시민회관에서 했던 시온합창단 공연 사진을 참석자들에게 한 장씩 전달했습니다.
1995년 1월 13일부터는 경상북도 지역 고령, 성주, 월항, 왜관, 선산, 상주 등 공석제단, 2월 15일부터는 경기도 지역 상천, 가평, 옥천, 능내, 김포, 강화, 인천 숭의 등 공석제단 관리를 위해 출장을 다녔습니다. 공석제단 관리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바로 전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월 23일에는 배한진, 권태영, 김재형, 박지호, 김동인, 변현석, 박종범, 김진우, 지정훈, 김대환, 김태식, 이영진, 김윤진, 김기환 학생 가정에 심방을 다녔습니다. 이 가운데는 안 믿는 집 자녀들도 많았습니다. 안 믿는 가정에 심방을 가면 “아무개가 다니는 교회에서 왔습니다. 앞으로도 교회에 잘 보내 주십시오”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믿는 집 자녀들일수록 더욱 심방을 자주 갔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느슨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틈만 나면 심방을 가서 부모와 아이들을 만나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