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과 힘차게 찬송하시던 모습 못잊어
백정환 권사(2) / 기장신앙촌이만제단이 완공된 후 ‘특별전도대’가 조직되면서 저도 그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특전대는 대부분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감람나무 체계를 전하며 전도했는데, 기성교회 목사를 찾아가 성경 토론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특전대원 여러 명이 미아리의 제일교회를 찾아가서 목사와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에게 “성경에 나오는 감람나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더니 “감람나무는 여호수아와 엘리야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호세아서 14장에 보면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린다고 기록돼 있는데요?” 하고 반문하자 목사는 우물쭈물하며 답변을 못했습니다. 그러다 버럭 화를 내더니 “왜 남의 교회에 와서 떠드느냐?” 하며 그 교회 청년들을 불러서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게 했습니다. 그렇게 성경 토론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감람나무’에 대해 질문하면 목사들이 제대로 답변을 못 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이만제단 완공 후 ‘특별전도대’ 활동
기성교회 목사들과 성경토론하며 감람나무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하는 목사가 한 사람도 없어
1957년 7월에는 밀양전도관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부흥집회와 체육대회가 함께 열렸습니다. 그때 이만제단의 특전대원들도 밀양에 내려가 집회에 참석한 후 체육대회에 참가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마라톤에 참가해 열심히 도로를 달렸으나 그만 코스를 잘못 드는 바람에 아쉽게 실격된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저희들과 같이 농구를 하셨으며 그날 밀양 삼문동 공설운동장에는 힘찬 응원과 함성 소리가 울렸습니다.
밀양에 다녀온 후 저는 전라남도 화순전도관으로 전도사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역자가 되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저는 해낼 수 있을지 염려되었으나 ‘어디를 가든지 감람나무를 전하면 되지 않겠나?’ 하며 용기를 내었습니다. 그 후 보성제단에서 시무할 때 하나님께서 보성제단에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전도사는 교인들을 섬길 줄 알아야 한다.” 하시며 교인들을 아끼고 존중하면서 감람나무를 바로 증거할 때 제단이 발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들은 교역 생활에 귀중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전도사는 교인 섬길 줄 알아야 한다`
교인들을 아끼고 존중하면서 감람나무를 바로 증거할 때
제단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가르치셔
그러던 1958년 2월이었습니다. 이만제단에 다니는 친구가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 내용 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이만제단을 다녀갔다.’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2월 9일 일요일 오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경호원들과 함께 이만제단에 찾아와서 제단 안팎을 살펴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만제단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의 건물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후 복구가 시급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건설된 이만제단이 큰 화제가 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해 12월에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헌금을 사기로 몰고 안찰을 상해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죄목이었습니다. 전도관의 교세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가자, 두려움을 느낀 일부 위정자들과 이들을 등에 업은 특정 종교 세력이 하나님을 투옥으로 옭아매려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옥에 가신 후 저는 울분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신문지상에 매일같이 악의적인 비방이 떠돌고 이에 몇몇 교인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속이 상했습니다. 밥도 넘어가지 않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꿈 중에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참지 못하는가? 이것도 못 참고 어떻게 감람나무를 따라가는가? 어려움을 넘고 또 넘어야 감람나무의 굵은 가지가 된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 자신을 추스르며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이겨 내자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63년 충청북도 증평전도관에서 시무할 때였습니다. 연세가 높으신 여자 권사님 한 분이 신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장례예배를 드리기 위해 그 댁에 갔더니 고인은 지병 때문인지 복수(腹水)가 가득 차서 임산부처럼 배가 심하게 불러 있었습니다. 같이 간 권사님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배 속에 있는 물이 빠지면 요가 다 젖고 냄새도 심하게 날 텐데…….” 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저는 먼저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 후 제단으로 돌아오고, 권사님 몇 명이 그 집에 남아서 시신을 생명물로 씻기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제단에서 새벽예배를 마친 후 그 집에 가서 시신을 봤더니, 홑이불을 덮어도 불룩하게 솟아 있던 배가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싹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권사님들이 “아이고, 물이 다 빠졌네. 냄새가 나면 어떡하지?” 하며 이불을 젖혔는데 신기하게도 요 자리에 물 한 방울이 없었습니다. 또한 뻣뻣하게 굳어 있던 시신의 몸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노긋노긋해져서 손과 발이 너무나 부드럽게 움직여졌습니다. 앙상하게 말라 있던 고인의 얼굴에 보기 좋게 살이 오르고 주름살이 펴져서 생전보다 더욱 젊어 보였습니다.
고인의 가족과 친척들은 복수가 감쪽같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편안한 고인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썩고 흉하게 변하기 마련인데, 시신이 이처럼 아름답게 화하는 것은 감람나무의 역사이며 생명물의 권능’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원래 고인의 남편과 조카는 기성교회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시신이 피는 모습을 보고 전도되어 증평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1981년 제 1회 이슬성신절에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신 후
성경의 ‘어린양’은 바로 ‘인간의 죄를 씻어 주시는 감람나무 하나님’인 것을 깨달아
초창기 이만제단서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가 되세요`하신 말씀 떠올라
1964년에 교역 생활을 마감한 저는 부평제단에 다니다가 1970년에 부산으로 이사하여 신앙생활을 계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981년 제1회 이슬성신절에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신 후 관련된 성경 구절을 자세히 풀어 주셨는데, 성경에 기록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은 예수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안아맡아 씻어 주시는 감람나무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초창기 이만제단에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가 되세요.” 하시자 이만제단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네!” 하고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그 일을 회상하며 ‘그때나 지금이나 죄를 씻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구나. 그 말씀대로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부산 반여동제단에 다닐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유지로 꼽히는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기장신앙촌에 가면 사람들이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을 받아 가려고 줄을 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사장님이 직접 보셨습니까? 기장신앙촌에 가 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 얘기가 그렇더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가 수십 년 전에 하던 비방인데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건 상식의 문제 아닙니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나 전하는 사람이나 그 인품을 다시 볼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느낀 바가 있었는지 그 후로 신앙촌에서 만든 제품에 관심을 보이며 하나둘씩 사용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생명물간장을 무척 좋아하며 애용했습니다.
저는 1996년 기장신앙촌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새소리가 울리는 초소에서 찬송을 부르며 감사한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눈을 뜰 때면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깨끗하게 살 것을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나이에도 건강을 허락해 주셔서 귀한 일을 할 수 있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50여 년 전 하나님을 처음 뵈었을 때를 회상해 봅니다.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과 새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힘차게 찬송하시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 모습은 아마도 제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가슴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주 하나님 뵈올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뵈고 눈물 뿌리도다.’ 하는 찬송가처럼 구원의 자격자가 되어 그날에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