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다
최영희 권사(3) / 덕소신앙촌그러던 1958년 12월, 하나님께서 투옥되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사신앙촌 노구산 집회 때 연인원 7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가 모이자, 이러한 폭발적인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일부 기성종교 세력과 정치 세력이 합세하여 하나님께 죄 없는 죄를 씌워 옥고를 치르시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신 후 저는 그동안 뵈었던 하나님의 모습을 가슴속에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천막 집회에서 힘차게 찬송하시던 모습, 원효로 구제단에서 몇 시간씩 ‘동방의 일인’과 ‘감람나무’를 외치시던 모습, 신앙촌을 건설하시며 밤낮없이 일하시던 모습……. 참된 구원의 길을 알게 하시고 귀한 신앙의 터전을 일구어 주신 하나님. 영과 육이 새 삶을 살도록 해 주셨음을 그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많은 교인들과 함께 재판정에 가서 공판 받으시는 모습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판사를 향하여 “나는 1년 열두 달 365일 복음을 전파한 것뿐입니다.”라고 하실 때 저는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호송 버스에 오르신 후에도 차창을 열고 교인들을 계속 바라보시던 그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1962년 덕소신앙촌에 입주한 저는 제과부에서 현장 서무로 일하다가 결혼 후 직매소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84년경 기장신앙촌 축복일에 참석해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안찰을 받은 후부터 제 마음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밸이 쑥 빠져나갔다고 해야 할까, 어떤 일이 있어도 속에서 신경질이나 화가 올라오지 않았고 텅 빈 마음의 깊은 곳에는 한없는 기쁨과 평안이 흘렀습니다. 그때 친한 사이인 김만자 권사님에게 “권사님은 안찰 받은 후로 어떠세요?” 하고 물었더니 “응, 한마디로 밸이 쑥 빠진 것 같아.”라고 대답하여, 나도 똑같은 느낌이라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1990년 2월 7일 하나님께서 낙원으로 가신 후 그해 10월에 어머님(故 함간난 권사)이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젊었을 때 한쪽 다리를 다쳐서 약간 불편하셨던 어머니는 나머지 성한 다리에 중풍이 오면서 걷지 못하게 되었고, 무릎을 세운 채로 구부러져서 잘 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허리가 많이 굽으셔서 바로 누우시면 머리가 방바닥에 닿지 않아 항상 옆으로 누워 계셨습니다.
그렇게 10년 동안 거동을 못하시고 대소변을 받아 내게 되었는데, 누워서 지내시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몸에는 점점 욕창이 생겼습니다. 방 청소를 깨끗이 하고 목욕을 자주 시켜 드렸지만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 좋지 못한 냄새가 심하게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신 후에 몸을 똑바로 눕혔더니, 머리가 방바닥에 닿지 않아 베개를 2개 쌓아서 머리 밑에 괴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구부러진 다리를 펴 보려고 했지만 전혀 펴지지 않았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다리를 움직이니 어깨와 머리까지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덕소신앙촌 장례반 권사님이 오셔서 생명물로 시신을 씻길 준비를 하는데,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고약한 냄새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생명물로 깨끗이 씻기고 나자 무릎을 세운 채로 구부러져 있던 다리가 반듯하게 되고 허리까지 곧게 펴졌습니다. 살아 계실 때도 펴지지 않았던 다리와 허리가 돌아가신 후에 반듯이 펴져서 편안하게 입관을 했습니다. 그 전에 어머니를 찾아뵌 적이 있었던 조카는 “이모, 할머니 계신 방에 소독했어요? 냄새가 하나도 안 나네요.” 하며 무척 신기해했습니다. 그 은혜 속에서 어머니는 곱고 편안한 모습으로 가셨습니다.
저희 아버님(故 최용신 집사)은 무척 건강하게 생활하시다가 95세이시던 1993년에 거동이 불편하여 자리에 누우시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눈에 띄게 점점 쇠약해지시더니 운명하시기 며칠 전부터는 혀가 점점 굳어 말씀을 잘 못하셔서 “마이 안 대.(말이 안 돼.)” 하며 답답해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시며 가슴과 방바닥을 세차게 치시는데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덕소신앙촌 남자 관장님과 교인 분들이 오셔서 아버님을 모신 방에서 간절하게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관장님께서 하나님 찬송 테이프를 틀어 드리라고 하셔서, 저는 아버님 곁을 지키며 계속 찬송 테이프를 틀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아버님은 고통스러운 기색 없이 편안히 계시다가 저에게 일으켜 달라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으켜 앉혀 드렸더니 저에게 기대어 앉으신 채로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에 맞춰 고개를 흔드셨습니다. 제대로 찬송가를 부르지는 못하셨지만 “어- 어-” 하며 목에서 나오는 소리로 찬송을 따라 하시면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찬송을 부르신 후 다시 자리에 눕혀 드렸더니 빙그레 웃으시는 얼굴로 잠이 드셨고 몇 시간 후 편안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튿날 남자 장례반 권사님들이 오셔서 기장신앙촌에서 떠 온 생명물로 깨끗이 씻긴 후에는 뽀얗고 곱게 핀 모습으로 입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저는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며 생명물두부를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두부 차를 타고 달릴 때 찬송을 부르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좋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를 때면 하나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하루하루를 기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면서 귀한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