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죄인에게도 이 귀한 은혜를 주십니까!’

김경숙 퇴임관장(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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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지난호에 이어서>

1965년 8월 첫 부임지인 신철원제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습니다. 신철원제단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흙벽돌로 지은 자그마한 시골 제단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예배실에 호롱불을 밝히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무릎을 꿇고 찬송으로 밤을 지새우는 동안 가마니가 깔린 작은 제단이 그렇게 편안하고 아늑할 수가 없었고 정신은 점점 맑아지기만 했습니다. ‘신념에 찬 여인, 신념으로 일관하는 교역자가 되리라. 내 비록 부족하고 또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매 결단코 좌절하지 않으리라.’

`끝까지 잘 이겨라` 하셨던 하나님의 부드러운 음성
`어떤 하나님이시냐! 하나님 뜻대로 살아라` 하신 어머니의 가르침
여생을 온전히 그 뜻대로 행하며 아름답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다음 날부터 집집마다 심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단에 다녔다가 쉬는 교인들과 새로 나온 식구들을 찾아다니자 어느덧 3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또 제단에서 떨어진 지역에 기도처를 세워 놓고 그 주변 사람들을 심방하여 예배를 드리는 등 바쁘게 활동하는 사이 어느덧 계절은 추운 겨울에 접어들었습니다.
영하 18℃의 몹시 추운 날 아침이었습니다. 밖에서 “전도사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 보니, 젊은 여자 교인인 김춘심 씨가 마른 나뭇가지 한 짐을 허리가 휘도록 짊어지고 서 있었습니다. 제단에서 15리나 떨어져 있는 자신의 집에서 그 추운 날 땔감을 주기 위해 험하고 먼 산길을 넘어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맨발로 뛰어나가서 나무를 받아 내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1974년 경기도 박촌제단에 발령받아 시무하던 때의 일입니다. 한 교인의 어머니가 7년이 넘게 중풍으로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셔서 그 집에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시신을 씻기 위해 두 다리를 들었더니, 무더운 여름 날씨에 살이 부패되어 방바닥에 들러붙은 상태로, 다리를 들자 썩은 살이 허물어져 송장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송장 냄새는 어디에다 비유할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인간은 마귀 구성체’라는 말씀을 발표하셨을 때, 저는 흉측하게 썩어 가던 시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고, 죽고 썩을 수밖에 없는 마귀 구성체라는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박촌제단에 다니는 고인의 아들과 며느리, 교인들이 힘차게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제가 생명물로 시신을 씻겼습니다. 그토록 험했던 시신을 생명물로 씻기자 송장 냄새는 간 곳이 없고 향긋한 향취가 진동하며 시신이 환하게 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썩어 허물어져서 송장 물이 뚝뚝 떨어지던 살도 살아 있는 사람의 피부와 다름없이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고인이 생전과 비교할 수 없이 곱게 피어난 모습을 보고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저의 교역 생활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제단에서 이어졌습니다. 단에 설 때마다 이토록 큰 복을 주셨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 같은 죄인에게도 이 귀한 은혜를 주십니까!’ 젊은 날 천막 집회에서 뜨겁게 외쳤던 기도가 교역 생활 중에도 변함없이 제 마음속에 울렸습니다.

1981년경 서울 영등포제단에서 시무할 때, 교인의 동생인 25세 청년이 갑자기 숨을 거둔 일이 있었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인들과 함께 그 집에 가서 시신을 보았더니, 시커먼 얼굴에 온몸이 돌덩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때 생명물이 없어 그 집의 펌프 물로 시신을 씻기로 하자, 교인들 중에는 시신이 피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셔야만 시신이 피는 것이니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예배드리자고 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찬송을 부르며 시신을 다 씻긴 후에 보았더니, 시커먼 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맑고 뽀얀 얼굴로 그렇게 잘 필 수가 없었습니다. 돌덩이 같았던 몸도 언제 굳었던가 싶게 노글노글 부드럽게 움직여졌습니다. 그 집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목이 메도록 울고 있었는데, 예쁘게 핀 시신을 보고는 어느새 눈물을 거두고 평안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해 주심을 확실히 느끼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교역자로 활동하는 동안 어머니는 소사와 덕소신앙촌을 거쳐 기장신앙촌에 입주하여 신앙생활을 계속하셨습니다. 품성이 조용하고 말수가 적으셨던 어머니는 “나는 네가 전도사 하는 재미로 산다.” “어떤 하나님이시냐! 하나님 뜻대로 살아라.” 하는 말씀을 만날 때마다 꼭 하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던 어머니. 그 짧은 말씀이 제 마음속에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1983년 11월 9일, 어머니께서 79세를 일기로 주무시듯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습니다. 기장신앙촌 장례반 분들이 생명물로 시신을 씻겨 드렸는데, 온몸이 산 사람과 다름없이 노긋노긋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으며, 원래 피부가 하얀 분이셨지만 너무나 뽀얗고 예쁘게 핀 데다 주름살까지 싹 펴져서 마치 젊은 시절의 어머니가 곱게 화장을 한 것만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들 “어머니가 너무 잘 피셨다.”며 한마디씩 건넸습니다. 일생 동안 존경해 온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순간이었지만, 아쉬움과 슬픔은 제 마음속에 자리 잡지 못했고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삼십 대 젊은 시절에 신념으로 일관하는 교역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04년 정년 퇴임한 저는 기장신앙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축복일에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부드러우신 음성으로 “끝까지 잘 이겨라.” 하셨던 말씀은 제 삶에 큰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 귀한 은혜 한없이 부어 주시는 하나님. ‘이 부끄러운 존재를 어찌 하오리까!’ 말씀대로 살지 못한 제 모습에 눈물만 북받쳐 오릅니다. 오늘도 조용히 무릎 꿇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온전히 그 뜻대로 행하며 아름답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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