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고 죄가 씻어지니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정말 기뻐
손정숙 권사(1) / 기장신앙촌1937년 개성에서 태어난 저는 황해도 금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손 씨 문중의 마을에 친척들과 모여 살면서 함께 제사를 지내고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녔습니다. 지주였던 저희 집은 추수 때면 줄지어 찾아오는 소작농들을 대접하느라 밤늦게까지 북적였고 너른 곳간에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일제시대에 와세다대학을 졸업해 신식 공부를 했던 아버지는 신분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존중해 주셨고 어려운 소작농들을 도와주셨습니다. 해방 후 이북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서 지주들의 재산을 뺏기 시작하자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서울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철야하는 동안
백합꽃처럼 진한 향기가 밤새 진동
생각할수록 놀라워 마음이 이끌려
집회 기간이 끝날 때까지 참석해
북아현동에 살면서부터 어머니는 감리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며 임원을 맡아하셨습니다. 저는 미션스쿨인 이화여중과 이화여고를 다녔지만 종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5년에 어머니와 할머니가 남산공원에서 열린 부흥집회에 다녀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예배를 인도하실 때 좋은 향기가 진동하고 병자들이 많이 나았다며 신기해하셨습니다. 그 후 이웃집 아주머니가 박 장로님 집회에 가자 하셔서 구경 삼아 따라갔더니 서울운동장에서 집회가 이틀째 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녁예배만 드리고 오려 했는데 아주머니가 예배 후에도 남아서 철야를 하겠다고 하셔서 속으로 난감했습니다. 철야는 내키지 않았지만 혼자 밤길을 가기가 무서워서 저도 남게 됐습니다.
철야하는 동안 전도사님이 찬송을 인도하고 여러 사람들이 돌아가며 은혜 받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백합꽃처럼 진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화장을 진하게 했나 하며 둘러봤지만 그런 사람이 없는데도 향기가 계속 맡아졌습니다. 향기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고 진동하니 더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날이 밝아 집으로 돌아갈 때 제 몸이 훌훌 날아서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밤새 진동했던 향기는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웠고 거기에 자꾸 마음이 이끌려서 집회 기간이 끝날 때까지 일주일 동안 참석하게 됐습니다.
겨울날 창문이 하얗게 얼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늘진 쪽을 녹이겠다고
하셔서 창문을 보니 말씀대로
창문이 녹고 있어 신기해
그 후 박태선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원효로에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전차 종점에 있는 박 장로님 댁 앞에는 사람들이 타고 온 자동차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뒷마당에 예배실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기다랗게 생긴 예배실 양쪽에 유리창이 있었는데, 한번은 추운 겨울날 창문이 하얗게 얼어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나오셔서 창문을 녹여 주겠다 하시며 햇살이 들지 않는 쪽을 녹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날씨가 너무 추워서 오른쪽 창문은 햇살이 들어와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는데, 예배드리다 창문을 보니 정말 그늘진 왼쪽 창문이 줄줄 녹고 있어서 무척 신기했습니다.
원효로 전도관에서 안찰을 받게 됐는데 하나님의 손이 닿자 아프더니
잠시 후 아픔이 물러가고 시원해져 안찰을 받고 나와 집에 돌아갈 때
몸이 가벼워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뜨는 것 같았고 기쁘고 좋아 자꾸 웃음이 나
저는 매일 새벽마다 1시간씩 걸어서 원효로전도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감리교인이신 어머니에게 전도관에 같이 가자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도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일이 생각난다 하시며 은혜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감리교회 임원이었던 어머니가 전도관으로 옮기자 목사와 교인들이 돌아오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전도관에 계속 다니셨습니다. 한 동네에 사는 윤치영 장관 가족도 전도관에 다녔는데 장관 부인 이은혜 여사가 가끔씩 저희 집에 와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이은혜 여사는 위장병이 깊어서 수술을 여러 번 받았지만 미음조차 잘 삭이지 못했는데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깨끗이 나아서 밥도 잘 먹게 되고 건강해졌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안찰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는데 얼마 후 저도 원효로전도관에서 안찰을 받게 됐습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앞사람들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배와 눈에 가만히 손을 대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제가 안찰받을 때는 배 속에서 주먹만 한 덩어리가 불뚝 솟아올라 하나님 손을 피해 움직였는데 덩어리에 하나님 손이 닿자 얼마나 아픈지 깊이 쑤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잠시 후 아픔이 물러가고 시원해질 때 “이제 됐다.” 하시며 손을 떼셨습니다. 안찰을 받고 나와 집에 돌아갈 때 몸이 너무 가벼워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뜨는 것 같았고 왜 그리 기쁘고 좋은지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안찰 받을 때 아픈 것은 내 속의 죄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죄가 씻어지니 가볍고 시원해지며 마음이 이렇게 기쁜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더기 심방 중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향해 “쉭!쉭!” 축복하실 때
입에서 뽀얀 것이 폭폭 쏟아져 나와
여름이라 입김 나올 리 없는데 신기
원효로전도관에 교인이 늘어나면서 마포 언덕에 이만 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큰 제단이 세워졌습니다. 그 무렵 무더기 심방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며 집회하시고 교인들 집에도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한 구역에서 집회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 교인들은 버스며 전철을 타고 쫓아 다녔습니다. 저도 예배드리는 재미에 신나게 따라다녔는데 어느 날 이런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향해 “쉭! 쉭!” 축복하실 때마다 입에서 안개보다 뽀얀 것이 폭폭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여름이라 입김이 나올 리도 없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심방 중에 저희 집을 오셨을 때는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안찰해 주셨고 큰 물통에 담긴 물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쉭! 쉭!” 하고 축복하시자 펄펄 끓는 것처럼 물방울이 부글부글 올라오더라며 놀라워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명물로
정성껏 씻기는데 아궁이에 불을 땐
방에 시원한 바람 은은하게 감돌아
성신의 바람으로 지켜주심 느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이만제단 전도사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입관예배를 드리고 어머니와 제가 생명물로 시신을 씻겨 드렸습니다. 정성 들여 세 번을 씻기는 동안 할머니 주변으로 시원한 바람이 은은하게 감돌았습니다. 그때가 추운 겨울이라 창문을 전부 닫아 놓았고 음식을 하느라 아궁이에 불을 때어서 방이 절절 끓었는데 신기하게도 시원한 바람이 계속 불었습니다. 어머니도 시신 주위로 바람이 분다고 하시며 “성신의 바람으로 지켜주시나 보다.” 하셨습니다. 다 씻긴 후에 할머니를 보니 입술이 발그스름하고 이마에 있던 주름살도 펴져서 참 곱고 예쁘셨습니다.
(손정숙 권사님 신앙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