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진보와 종북주의

한성대 대학원장 이종수
발행일 발행호수 2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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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회적 담론 가운데 하나는 보수와 진보에 관한 쟁론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수’는 기득권 구조 등 전통적 질서를 유지·옹호하려는 사고방식을 말하며, 진보는 기존질서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을 일컫는다. 보수와 진보는 가치성향에서 자유-평등, 성장-복지, 시장중심주의-정부개입주의, 점진적 변화-급진적 변혁의 상반된 모습을 띠게 된다. 진보는 나아가 환경·평화·인권·자주·통일의 가치영역에 대한 선점을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분단과 전쟁의 불행을 겪은 우리 사회에서는 특수한 의미로 진화·왜곡되어 왔다. 건국 초의 이념적 혼란기부터 진보진영에 대해서는 그 넓은 ‘진보’의 스펙트럼 속에서 좌파와 빨갱이라는 독특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물론 극소수이기는 하나, 진보진영의 일각은 1980년대 이후에는 주사파(主思派), 친북파(親北派)에 이어 종북파(從北派)의 덧칠까지 쓰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용어들은 이념적 헤게모니 다툼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유형화의 산물이기는 하나, 진보진영 전체가 이러한 부정적 상징을 부분적으로 공유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주의(從北主義) 논쟁이 불거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북한정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일컫는 종북주의라는 용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수진영에서 전략적·공격적 의도로 개념화한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일부 분파가 진보진영의 분화과정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개념이다. 단순한 친북파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 이 용어는 2001년 사회당이 “종북주의자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게 되고, 특히 2008년 북한공작원과 접촉한 혐의로 적발된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을 민주노동당 주류세력이 감싸주자 진보신당의 창당 주역들이 ‘종북주의 반대’를 천명, 탈당하게 되면서부터 사회적 관심을 본격적으로 끌게 되었다.

보편적 의미에서의 진보주의자와 친북파, 종북파는 개념적·현실적으로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일단의 진보집단이 ‘종북주의’와 분명한 선을 긋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북관의 차이로 분열된 진보정파들이 연합공천을 하고, 수백 개의 진보 단체가 거대한 연대를 형성하여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진보진영에 대해 보수진영은 굳이 진보주의자와 친북파, 종북파를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거대한 연합체를 형성, 사회적 이슈를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양분해 버리기 때문이다. 중간층을 기회주의 집단으로 몰아 그 존재를 용인하지 않는 두 집단 내에서는 또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장악, ‘열반의 오류’(Nirvana fallacy)가 내재된 극단적 주장을 펴게 되는 것도 갈등을 격렬하게 하는 한 요인이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념적·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념적 양극단보다는 중간층이 사회적 중심세력으로 역할하고, 집단적·이념적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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