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대한민국

박효종/서울대 초빙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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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들이 자신들을 잡아 죽이는 도살장의 행위에 분노했다. 이 사태에 격분한 소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대책을 강구한 결과 힘을 모아 도살장을 파괴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이 때 한 늙은 소가 나서서 말했다.

“우리 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도살장 때문이 아니라 우리 소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이니 사람들이 습관화된 입맛을 바꾸기 전에는 도살장을 없애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없다네.”

이 우화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것은 안전을 무시하거나 안전을 낭비로 치부하는 관행, 원칙과 규정을 지키면 바보라는 문화가 살아있는 한, 아무리 정부가 나서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해도 백약(百藥)이 무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회 어느 영역에서나 법이나 원칙, 규정대로 하자고 주장하면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제반 법규와 규정을 ‘계륵’처럼 치부해온 세월호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제공자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주차질서 등 교통법규가 잘 준수되는 이유와 관련, 할머니들을 수훈자로 꼽는다. 별로 할 일 없는 할머니들이 하루 종일 주택 밖을 주시하고 있다가 주차를 잘못하는 차량을 발견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하고 또 신고받은 경찰은 지체없이 달려와 딱지를 떼고 처벌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구사회를 보면서 감탄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재난대비 훈련이 매우 철저하고 또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호텔이건 학교건, 공공건물이건 화재에 대비한 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호텔투숙객이건 공공건물 이용자건, 훈련용 비상벨이 울리면 짜증이나 불평 한마디 없이 순응한다.

우리도 안전한 나라를 만들려면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패러다임에 과감한 메스를 가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 공동체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빨리 빨리”를 따지는 속도감각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따지는 방향감각이라는 것을 서로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터나 일상사에서 원칙을 지키고 규정을 지키자고 주장하는 이웃이 있다면, 따돌리거나 기를 꺾어놓기보다는 지지해주어야 한다. 또 응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오면 지체없이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 옛날 홍해가 갈라졌던 ‘모세의 기적’이 우리나라 도로에서 재현된다면, 우리사회의 안전문화는 선진화 단계에 올라선 것이다.

“불편하더라도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관행과 문화는 마치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는 것처럼 결심만 한다고 즉시 정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지포스가 무거운 바위를 산위로 끌어올려도 제 무게 때문에 또다시 굴러내려오듯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하는, 이른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작업이다.

우리 모두가 현대판 시지포스의 수고로움을 감당할 태세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물으며 굳건하게 다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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