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생명을 입어서 그날에 영광의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김귀임 집사(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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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 후 저는 덕소신앙촌에 가서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눈과 배에 살짝 손을 얹으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게 누르시지도 않는데 건장한 남자 분이 아프다고 소리치며 팔다리를 버둥거려서 양옆에서 사람들이 붙잡아 주었지만 버둥거리는 힘이 얼마나 센지 붙잡던 사람들이 나가떨어질 정도였습니다. 또 어떤 분은 하나님의 손이 가까이 갔을 뿐 아직 닿지도 않았는데 아프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찰하시며 성신을 부어 죄를 소멸시키시기 때문에 그렇게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안찰받을 때 눈이 너무 아팠는데 내가 죄지은 정도대로 아프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안찰받을 때 죄지은 정도대로 아프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어
안찰 받고 나오자 온몸이 가볍게 느껴져
‘죄를 사함 받으면 이렇게 가볍구나!’

안찰을 받고 나오자 온몸이 가볍게 느껴져서 발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죄를 사함 받으면 이렇게 가볍구나!’ 하며 훨훨 나는 것처럼 걸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덕소신앙촌을 둘러보는데 얼마나 아름다운지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쁘게 지어진 양옥들과 그 앞을 흐르는 강물, 소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을 바라보며 ‘하나님 베풀어 주신 신앙촌에서 나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즈음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서 흩어져 살던 자식들과 서울에서 같이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따라 아이들도 천호동전도관에 다녔는데 1965년에는 딸이 먼저 덕소신앙촌에 입사하게 되었고, 이듬해 저도 항상 그리던 덕소신앙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덕소신앙촌에서는 각 공장별로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이 있어서 저는 직조공장 식당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 후 1971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해서도 직원 식당에서 일했는데 매일 25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며 바쁘게 움직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신앙촌 농장으로 옮긴 후에는 각종 곡식과 채소를 키우는 일을 했습니다.

전국의 학생들이 신앙촌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 학생들이 있는 예배실 안을
들여다봤더니 학생들 얼굴이 보일락 말락할 정도로 예배실 가득 뽀얀 안개가
쨍쨍한 날씨에 2층 예배실에 안개가 낄리는 없고 그때 ‘이슬성신이구나!’깨달아

저는 기장신앙촌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의 김성종 권사님과 한가족처럼 도와주며 가깝게 지냈습니다. 마음이 푸근하고 넉넉했던 권사님은 무엇이든 나눠 주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지난 2005년에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가 연락을 받고 갔을 때는 이미 입관예배를 드리며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긴 다음이었습니다. 그때 권사님은 말갛고 뽀얗게 핀 얼굴에 발그스름한 홍조를 띠었고 입가에는 생긋 미소를 짓는 모습이었습니다. 생전에 권사님은 마른 얼굴에 주름이 많았지만 예배를 드린 후에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그렇게 젊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뽀얗게 핀 손이 하도 고와서 살짝 잡아 봤더니 살아 계신 분처럼 노긋노긋 부드러웠습니다. 저는 권사님에게 “편안히 잘 가세요.” 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마지막까지 권사님을 기억해 주시고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언젠가 학생축복일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매월 학생축복일이면 전국의 학생들이 신앙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은 축복일예배가 끝난 후에도 행사가 있는지 학생들이 예배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나 궁금해서 들여다봤더니 학생들 얼굴이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예배실 가득히 안개가 낀 것이었습니다. ‘무슨 안개가 저렇게 끼었나?’ 하며 깜짝 놀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가 쨍쨍한 날씨에 2층 예배실에 안개가 낄 리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이슬성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단에 나온 후로 이슬성신이 안개처럼 뽀얗게 내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직접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후에도 우리 곁에 함께 계시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신앙촌에서 일과를 마치고 감사 기도를
드릴 때 방 안 가득 향취가 진동해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주심을 느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귀한 은혜를 주신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마음이 몹시 괴롭고 고달팠던 시절 ‘하나님! 저에게도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며 기도드릴 때 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던 향취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신앙촌에서 일과를 마치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드릴 때 방 안 가득 향취가 진동해서 깜짝 놀랐던 일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간절하고 진실하게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주시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올해로 아흔여섯이 되는 저는 신앙촌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100세를 바라보는 지금도 건강을 허락해 주셔서 지나온 시간과 받은 은혜를 글로 남길 수 있어서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는 새벽예배 때 들은 말씀을 하루 종일 머릿속에 새기며 바른 정신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요즘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 없이 다 가르쳐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 가르쳐 주셨는데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 시간이 한없이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율법을 지키며 맑게 살자고 다짐해 봅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모두 보고 계시니 못난 마음과 죄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습니다. ‘은혜로 하나님 뵈옵는 것 참 아름다운 영광이로다.’ 하는 찬송과 같이 은혜로 새생명을 입어서 그날에 영광의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귀임 집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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