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관장 편 ⑨ 꿈을 꿔도, 상상을 해도 오로지 ‘신앙촌’으로 향하는 생각 뿐…
꿈을 꿔도, 상상을 해도 오로지 '신앙촌'으로 향하는 생각 뿐...방학 때는 곧잘 교회에 오던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 행동과 마음이 방학 때와는 달라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2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 선생님들은 3학년 때 있을 취업 준비를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고 하면서, 어느 기업에 몇 명이 입사를 했으며, 누가 무엇 때문에 떨어졌는지, 수업에 들어오는 분마다 강조를 했다. 여러 번 듣다보니 나도 점점 걱정이 됐다. 친구들은 취직을 하는데 나만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기면서 도서실 쪽으
로 눈길이 자주 갔다.
늘 종례가 끝나기가 바쁘게 제일 먼저 운동장을 가로 질러 뛰어서 심방을 갔었다. 그렇게 매일 만난 아이들의 이름을 관장님께 말씀드렸고, 10분 휴식시간에는 옆 건물인 중학교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으며, 어디로 심방을 갈지 계획하느라 친구들이 뭐하고 지내는지 별로 관심도 안 가졌다.
그렇게 2년 6개월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친구를 따라 도서실에 갔더니,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이 그 곳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약간은 충격이었다.
그즈음 학교 앞에서 삼행시를 적어내는 학원 홍보 이벤트에 응모를 했는데, 1개월 무료 수강에 당첨되면서 마음이 점점 교회와 멀어져 갔다.
처음에는 학원 갈 시간 까지만 심방을 하다가, 그런 날도 점점 줄어갔으며, 학원으로 바로 가는 날이 늘어났다.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나쁜 일 하는 게 아닌데 어때? 그리고 새벽예배를 안 드리는 것도 아니고 매일 교회에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뭐?’라고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냈다.
그렇게 시간이 가던 10월 초, 그날은 학원이 가기 싫었는지 해가 지기 전에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일어서는데, 권사님 한분이 나를 보고 놀라시면서 “니는 와 여기 있노?” 하셨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관장님이 나오셨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무슨 일이냐고 여쭤볼 엄두가 안 났다. 권사님 말에 의하면 갑자기 부르셔서 학교와 직장이 끝나기가 바쁘게 다들 신앙촌으로 갔단다.
나만 이곳에 남아있다.
늘 북적거리고 소란스럽던 곳이 조용하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일까? 왜 급하게 찾으셨을까?’ 그동안의 나의 생활과 마음가짐이 후회가 되면서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다들 하나님께 갔는데 나만 여기 있어.’
그렇게 긴 저녁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되었다. 언제 돌아오는지 여쭤볼 수가 없어서 버스 정류장만 왔다 갔다 하며 서성거렸는데, 캄캄해지고 나서야 친구와 언니들이 돌아왔다.
궁금하고 반가운 마음에 물어보고 싶은 말도 많아서 다가갔는데, 그들은 뭔가 모르게 달라 보였다. 늘 함께 하나님께 말씀을 듣고 축복을 받으러 다닐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 가기가 주춤거려질 정도로 친구와 언니들은 예뻤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게 저런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신앙촌에 가서 살고 싶어졌다.
해가 바뀌고 3학년이 되면서 학교 친구들은 취업 때문에 경쟁자로 변해갔고, 나는 누구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어떻게 하면 신앙촌에서 살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그러다보니 꿈을 꿔도, 생각을 해도, 상상을 해도 오로지 마음이 신앙촌으로 향하는 한 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함께 하던 관장님이 물어 보셨다.
“영수야! 너 신앙촌 가고 싶니?”
“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대답을 했었다.
그곳에서는 얼마나 맑게 살아야 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되는지 나는 아무 것도 몰랐고, 그냥 하나님 가까이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정말 자격이 안 됐지만,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그렇게 해서 나는 시온에 입사를 했고, 우리 학교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취업을 한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