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신(狂信)의 역사

발행일 발행호수 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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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하리라.”

예수가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이를 기념하는 성찬식에서 밀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밀떡이 예수의 살, 포도주가 예수의 피라고 했다. 때문에 2세기 로마에서는 ‘예수 믿는 자들은 식인종’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성찬식의 기원은 예수 이전부터 있었던 테오파기(theophagie)라는 원시 신앙이었다. 테오파기는 신을 먹는 것을 뜻했다. 일례로 포도주의 신이자 황홀경의 신 바쿠스 신도들은 종교 의식에서 반드시 포도주를 마셨다. 취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산짐승을 갈기갈기 찢어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폭식했고, 이런 행위가 신의 몸을 먹는 것이며 신과 하나 되는 효험이 있다고 믿었다.

가톨릭 신도들은 밀떡이 예수의 살이자 영생을 주는 생명의 양식으로 믿고 있다. 사제가 밀떡을 축성하면 예수의 몸, 이른바 성체(聖體)가 되고, 성체를 먹어 거룩하게 되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성체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다. 성체를 모독하는 것은 가톨릭에 대한 중대한 범죄로 교회법에 따라 자동 파문에 처해진다.

그런데 성체가 만인 앞에서 모독당한 일이 있었다. 작년 7월 성체에 빨간펜으로 욕설을 새기고 불로 태운 사진이 인터넷에 실린 사건이었다.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온 국민이 예수를 욕하는 육두문자와 성체를 욕보이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엄청난 사태에 가톨릭은 경악했고 정면 대응에 나섰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 모독 행위를 절대 묵과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서슬 퍼런 촉구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의 댓글을 보면 네티즌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성체? 믿지도 않는 사람에게 왜 신성을 강요하나? 개한테 간식으로 딱 좋은 사이즈네.(ryu7****)”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맹신하는 거 정신병의 일종 아닌가? (miji***)” “신경 꺼라. 자기 똥도 성체로 보면 성체다.(harp****)” “밀떡은 성폭행 신부들이나 잡수세요.(문재*)” 급기야 한 네티즌은 석유통 사진을 올리며 “천주교와 전면전을 선포한다. 매주 일요일 성당 하나를 불태우겠다.”는 글까지 인터넷에 게시했다.

공개적인 방화 협박에 경찰은 감시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가톨릭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던 기자회견과 달리 침묵에 빠졌고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공공연하게 망신당한 입장에서 침묵은 뜻밖의 결론이었다. 이 결론에 대한 이유를 교황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는 ‘관용의 광신(狂信)’을 가지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광신으로 보일 만큼 지나치게 관용을 베풀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성체라는 신앙의 핵심이 훼손당해도 가만히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광신도인 모양이다. 광신의 사전적 의미는 이성을 잃은 것이라고 한다. 2,000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밀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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