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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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CNN 보도에 따르면 친근한 악마 동상이 스페인 세고비아에 세워질 예정이라 한다. 뿔 달린 악마가 셀카를 찍으며 빙그레 웃는 얼굴이다. 동상이 공개되자 재미있다는 의견과 악마의 착한 얼굴은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진짜 악마는 어떤 얼굴일까.

성경에서 악마는 이간질하고 파멸시키는 존재였다. 사사기 9장에 그런 악마가 등장한다. 악마는 이스라엘 세겜 백성과 지도자 아비멜렉 사이에 끼어들어 서로를 배반하게 만들었다. 지도자는 백성 1,000여 명을 죽여 버렸고, 지도자도 백성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사사기 9장 23절에 아이러니하게 극적인 반전이 있다. 악마를 보낸 것이 하느님, 즉 그들이 믿는 신이라는 것이다. 그 신이 명령한 대로 악마는 사람들을 이간질시키고 죽이게 만들었다. 악마는 신의 뜻에 복종하는 충실한 하인일 뿐이었다. 신의 하인이라는 뜻에서 악마는 천사의 얼굴로 묘사되기도 했다.

날개 달린 천사의 얼굴은 평온하다. 그러나 천사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십자가를 들고 사람들을 찔러 죽이고 있다. 이것은 1572년 신교도 학살을 기념해 교황이 제작한 메달이다.

신교도 학살은 1572년 8월 24일 일어났다. 그날 파리를 흐르는 센강은 신교도의 피로 물들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어린 아기부터 노인까지 무차별 학살했다. 닥치는 대로 죽이는 광기와 절규하는 비명으로 파리는 아비규환이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신교도 지도자였던 콜리니 장군의 목을 잘라 트로피처럼 들고 환호했다. 수레마다 내장이 쏟아지고 난도질당한 시체가 가득 쌓였다. 살인의 광기는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 사망자가 7만 명을 헤아렸다.

이 소식을 접한 로마에서는 신의 은총을 경배하는 축포가 터졌다. ‘이단자’인 신교도를 척살한 것은 신의 은총이라는 것이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참수한 콜리니 장군의 머리를 교황에게 선물했는데 이보다 훌륭한 전리품은 없었다.(참조 : 장오리외 著, <카트린느 드 메디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크게 기뻐했다. 이날을 기념하는 특별 미사를 올리며 ‘신에게 감사를’이라는 뜻의 떼 데움(Te deum) 찬송을 부르도록 했다. 또 신교도 학살을 기념하는 메달을 제작하게 했다. 이때 살인한 가톨릭 신자들은 천사의 얼굴로 기념 메달에 새겨지게 되었다.(참조 : 인명사전편찬위원회 著, <인명사전>)

학살 기념 제작 메달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신교도 학살을 기념해 제작한 메달. 메달은 프랑스 왕 샤를 9세에게 증정했다.

진짜 악마는 어떤 얼굴일까. 최근 악마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2013년 3월 12일 저녁,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가 베드로성당 발코니에 처음 나타난 순간을 찍은 사진이었다. 교황은 손을 흔들며 군중을 향해 친근하게 미소지었다. 그런데 그 뒤 가림막에 비친 그림자는 놀랍게도 뿔 달린 악마였다. 물론 누군가 장난으로 만든 사진이었을 테지만 인터넷에 퍼지며 화제가 됐다. 때로 진실은 장난의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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