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취에 몸이 시원해지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해”
<신앙체험기 521회> 성남교회 장원애 권사 1편꿈에서 뵌 분을 광주공원 집회에서 만나
안수 받는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은혜를 체험해초산동 전도관에서 집회 30분 전 향취 맡고
앉아 있는지 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은혜 체험 거듭되며 마음속에 분명한 확신 자리 잡아
저는 1937년 전남 순천시 주암면 광천리에서 3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 맞물린 격변의 시대라 나라 안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해 고흥의 한 섬에 미리 거처와 식량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저희 가족은 그 섬으로 피란을 떠났고, 아버지의 준비 덕분에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란살이가 길어지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어린 마음으로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배울 기회를 찾아 시내로 나가야겠다는 뜻을 아버지께 여러 차례 말씀드렸고, 고심 끝에 아버지는 제 뜻을 받아들여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시내로 나왔지만 형편은 여전히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이대로는 학업을 이어 가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저는 열아홉 살 되던 해, 홀로 광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 양장 기술을 배우면 스스로 가게를 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촌 오빠 집에 머물며 양재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습니다. 낮에는 기술을 배우고 저녁에는 공부하며 제 힘으로 앞날을 열어 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느 날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시내에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제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 오십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전단에는 며칠 뒤 광주공원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은 없었지만, 평소 교회 옆을 지날 때마다 들리던 찬송가 소리에 마음이 끌려 이번 기회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저는 광주 지리에 밝은 사촌 오빠에게 집회 장소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고, 며칠 뒤 집회 날이 되어 오빠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집회 장소에 다다르자, 이미 아래쪽에서부터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지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언덕 위에 넓게 세워진 천막을 보며 대체 무엇이 있기에 저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까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가다 보니 어느새 강대상 근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자리에는 몸이 불편한 분들이 모여 있었는데, 제 옆에 앉아 있던 다리가 불편한 분은 박 장로님이 오시면 이쪽이 잘 보인다며 제게 자리를 조금 내주었습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사람들은 ‘속죄함’ 가사가 담긴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찬송이 잦아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니,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대체 어떤 분이 오시기에 저토록 마음을 다해 기도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잠시 후 머리 위로 “마음 문 여세요” 하시는 쟁쟁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단상을 바라본 순간,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단상 위에 서 계신 박 장로님의 모습이 무척 환해 보였고, 그 주변으로 밝은 빛이 감돌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옳다, 찾았다!” 하는 소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실 1~2년 전 꿈속에서 똑같은 분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꿈에서 그분은 환한 빛에 둘러싸인 채 저희 집을 한참 바라보시고 떠나셨는데, 그 모습이 내내 기억에 남아 언젠가 꼭 한 번만이라도 뵙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분을 이곳에서 드디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놀라움에 한동안 단상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에 집중했습니다. 박 장로님의 인도로 한참 동안 찬송이 이어졌고, 저도 어느새 찬송을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예배 중 박 장로님께서 쉭쉭 축복하시며 “병자들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곁에 있던 앉은뱅이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벙어리 아가씨가 앞으로 나가 찬송을 불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예배를 마친 박 장로님께서 단상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를 하며 지나가시던 장로님께서는 제게 세 번이나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그 손길이 닿자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기함과 경건함에 사로잡혀 그 순간 장로님의 얼굴은 감히 제대로 뵐 수 없었지만,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니 와이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금 전 단상 위에서 뵙던 환한 모습과는 달리, 그 헌신적인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져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초산동 집회에 참석했던 장원애 권사. (사진에서 왼쪽이 당시 장 권사의 모습)
그날, 집회가 끝났지만 돌아서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 저는 하루 더 그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새 철야 기도에도 참여했습니다. 다음 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저는 지프차를 타고 떠나시는 박 장로님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멀어져 가는 지프차를 바라보며 이분을 다시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곁에 계시던 다른 장로님께 여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서울에 계신다는 대답을 듣자 마음속에는 당장이라도 따라가 뵙고 싶은 간절함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에 아쉬운 마음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온 저는 한동안 양재 학원에서 디자인 공부를 이어가면서도 머릿속에는 늘 그날의 기억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큰오빠가 전단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집 근처 초산동에 전도관이 세워졌고 그곳에서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뵙기를 간절히 바랐던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집회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하루하루가 더디게 느껴질 만큼 제 마음은 온통 집회를 향해 있었습니다. 저는 큰오빠에게 지난번 집회에서 뵌 분이 보통 분이 아니셨으며, 그분의 말씀은 땅의 말이 아니라 하늘의 말씀처럼 느껴졌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오빠들에게도 이 놀라운 사실을 꼭 알려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초산동 집회로 향했습니다. 오후 6시부터 맨 앞자리 단상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예배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지난번 집회에서 뵀던 그분을 다시 뵈러 왔으니, 결코 헛된 걸음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간절한 마음 하나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박 장로님이 오시기 약 30분 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창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향기가 코끝을 스쳤습니다. 처음 맡아보는 신기한 향이었습니다. 혹시 누가 머리에 포마드를 발랐나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맡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몸이 시원해지더니,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마치 공중에 둥실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단에 오르시더니 지난번처럼 “마음 문을 여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은혜는 마음 문을 연 사람에게는 폭포수같이 임하지만, 마음 문을 닫은 사람은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며 다시 한번 마음 문을 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이어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 부족한 저를 이 자리로 이끌어 주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라 한동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뒤 박 장로님께서는 “내가 여기 오기 30분 전에 은혜를 부어주었는데, 그때 향취를 맡은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저요!” 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자 박 장로님께서는 저를 바라보시며 일어나 말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30분 전쯤 몸이 아주 시원해지면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으신 박 장로님께서는 저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주셨습니다.
장로님께서는 다시 한번 30분 전에 향취를 맡은 사람이 또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차례로 단상으로 올라가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체험담을 들으며 저는 제가 받은 은혜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수요일마다 초산동에서의 집회는 계속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오시는 날이면 안수를 해주시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시원함과 향취가 느껴졌습니다.

장원애 권사/성남교회
이러한 체험들이 쌓여가면서 제 마음에는 분명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렇기에 훗날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라고 하셨을 때도, 제가 겪은 일들을 떠올리며 그 말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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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끝까지 구원의 길 가길 소망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