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평동교회 – 교인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인 수원 평동교회

교인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인 수원 평동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48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장년회 임원들이 강병수 관장(맨 왼쪽)과 예배를 마치고 함께 했다. 왼쪽에서 일곱 번째가 장창순 회장이다. 노영춘권사(오른쪽 맨위), 김진오씨(가운데), 박원섭권사(맨아래)

우리나라 농업연구의 본산지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화성(華城)으로도 유명한 수원시
권선구 평동에 평동 천부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1970년대에 교회를 지을 때만 해도 이 곳은
허허 벌판이었으나 이제는 길이 사방으로 나 있고, 수원역에서 십 여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전도를 최우선 목표로
‘가고 싶은 천부교회’가
되도록 전도 활성화하고
‘이웃에게 신앙신보 보내기’
적극 펼칠 계획`

평동교회의 교인들은 주일 날 수원 시내는 물론 인근 용인과 화성, 평택 등지에서 모여든다.
작년 3월에 부임한 강병수 관장에게 평동교회의 모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교역 6년차인 그는 ‘전도‘라고 하였다. 그간 여러 가지 일로 전도가 소홀했다며 내년은 전도가 최우선 목표라고 하였다. 그는 전도계획을 조목조목 말하였다. “먼저 그간 쉬던 분을 중심으로 인근 교역자님들과 연합 심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도활성화를 기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주일학교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인근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가고 싶은 천부교회’로 자리매김을 하고 싶다며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신앙신보도 적극 활용하여 ‘이웃에게 신앙신보 보내기 운동’을 할 참이다.

● 생명물식품을 주 사업으로
먼저 사업 이야기 꺼내어 보았다. 평동교회의 사업은 현재 간장과 두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박일준 권사가 간장 사업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강 관장에 의하면 박 권사는 처음에는 시식용으로 선물을 주면서 거기에 연락처가 적혀있는 스티커를 붙여 홍보를 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하나 둘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지금은 수원, 오산, 용인, 화성 등지에 수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며
여기에 서울 서대문교회에서 오랫동안 소비조합을 하던 노영춘 권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사업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그의 실력은 서대문교회에서 소비조합원으로 활동할 때에 이미 입증되었다. 그는 두부 판매를 할 때에도 반품 없이 돌아오곤 하였다.

20세기를 마감하던 1999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노 권사는 사업을 할수록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고 하였다. 새벽 4시에 덕소에서 물건을 가져오고 저녁에 교회에 돌아오면 밤 8시~10시가 되곤 하였다. 그러나 피곤을 느끼지 않고 아침이 되면 늘 생기가 나곤 하였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에 가게를 방문하면 문전박대를 당하고 홍보용 두부를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두부를 가게에 선물로 주면 그것을 잘 받아서 맛을 본 가게는 주문을 하였고 그 가게는 사업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노 권사는 두 번이나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생명물두부 탑 차를 몰고 가던 중 앞의 큰 화물차에 가려 사람이 갑자기 뛰어든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의 발등을 치었다. 내려서 보니 자동차 바퀴가 완전히 발을 밟고 갔던 것이다. 병원에 데리고 가 MRI를 찍었는데 뼈는 물론이고 살갗도 상하지 않았다. 그 사람도 너무나 신기하다고 놀랐다. 이와 유사한 일이 한번 더 있었다. 어느 초등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들고 가던 아이와 차가 부딪혔다.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서 MRI를 찍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고 멀쩡하니까 아이 엄마도 너무나 신기해 하였다고 한다.
노 권사는 세월이 갈수록 감람나무 가지는 하나님께서 그야말로 불철주야 여러모로 지켜주심을 확신 한다고 하였다.

● 임원들의 활발한 활동
이 교회 장년회 회장인 장창순 권사는 건설업을 하면서 주일 예배를 마치면 주일만큼은 사업에 동참하며 요구르트 ‘런’ 판매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은혜의 체험은 큰 힘이 되고
은혜 받은 체험이야기가 나오니 조병주 권사가 나선다. 1970년대 초 그는 천부교회에 나온 지 며칠 안 되어 새벽예배를 쌓기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새벽예배 참석자들에게 생명물을 한 컵씩 줄 때이다. “생명물을 받아 마시자마자 향긋한 냄새가 나고 그 맛이 입안에 감돌았습니다. 종종 장례식에 참석하여 시신이 피는 것을 볼 때면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 어머니의 시신이 피는 것을 보고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새내기 김진오 선생이 거들었다. 일찍이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여 시온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1학년부터 교회를 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계기가 지난 6월에 일어났다. 대학 때부터 세상과 짝하던 아들이 눈물로 회개하고 돌아오길 기다리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는 회한의 눈물을 흘렀다. ‘왜 내가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았던가?’라는 후회가 쉼 없이 귓전을 맴돌았다. 모친이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송탄 천부교회 관장님과 교인분들이 오셔서 예배를 보셨을 때에 모친은 그에게 눈물로 ‘교회에 다시 나가거라’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리고 삼일 후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입관예배를 드리면서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그의 딸도 할머니의 시신이 핀 것을 보고 놀라워하였다. 예배를 드리고 생명물을 바르자 어머니의 시신의 입술은 마치 연지를 바른 것 같고 얼굴은 환히 피었다. “고등학교 때에 명동의 중앙대 부속병원 영안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켜보며 깨달았던 ‘시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고 한다. 어머니 장례식을 마치고나서 그는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한 때 재물도 쌓았고 신앙을 떠난 여러 생활을 했으나 그 모든 것이 헛되었음을 이제 깨닫고 매달 축복일과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있다.

● 멀리서도 한 마음으로
부회장 일을 맡고 있는 박원섭 권사는 1965년 경부터 신앙생활을 매향 천부교회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는 교회내의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그는 화성시 발안에 거주하는데 주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오면서 기도문을 하며 교회에 도착하여 예배를 드린 후에 교회 안팎의 이런저런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성실함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군대에 가기 전인 20살에 그도 조 권사와 마찬가지로 새벽예배에 나가면서 향취를 맡은 은혜의 체험을 하였다. 너무나 기쁘고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 누가 뭐라고 하여도 부인할 수 없는 체험을 하였기에 끝까지 이 진리를 갈 수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하였다.

● 사랑과 정성으로 뭉친 교회
강 관장은 “교인들이 모두 일치단결하여 동부리와 신천리 성지 수호 때에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사랑과 정성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평동교회 교인들은 왕년의 경기도관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찾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2011년을 준비하고 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